모두가 꿈꾸는 행운이 선물처럼 찾아 왔지만, 그것은 아름다움만 가득찬 상상속의 보석상자는 아니었다. 세상의 그늘에서 자신의 상처를 숨긴채 웅크린 여자아이에게는 갑작스런 밝은 햇빛마저 산란하고 버겁게 다가왔다.

그늘이라곤 한자락 미치지 않는 극한의 양지도 그 뚜렷한 그림자는 더욱 선명하기만 한것인지. 지나치게 눈부신 세상을 피해 자신만의 세계에서 차갑게 식어가던 한 남자는 뜻밖의 인연으로 다시 밖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돌려보는데...... 자신을 찾고 서로를 구하는 진정한 사랑은 존재하는 것일까?

제주시 ‘사랑 보육원’ 출신 여자 김민수, 재계 5위 세진그룹의 후계자 강민준.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가슴 따뜻한 사랑 이야기.


[본문 중에서]

민준은 별 생각 없이 전채용 나이프와 포크를 잡으려다가 문득 맞은편 여자의 두 손이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가 앞발을 모으고 있는 것처럼 뭔가 유심히 관찰을 하며 대기하는 듯한 여자의 가느다란 손. 뭐지? 설마 이걸 먹는 방법을 모르는 건가? 민준은 일부러 포크를 집으려다 말고 몇 초간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덩달아 포크를 집으려던 여자는 엉거주춤 집었던 포크를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 그때였다. 민준은 상대방이 적어도 이런 곳에서 태석을 맞선 상대로 맞이할 만큼 대단한 집 여식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불쾌하다든가 분한 감정이 들지 않고 자신 역시 거짓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는 부담감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슬쩍 유쾌한 기분마저 드는 것이었다. 역시, 그런 거였군. 태석이 녀석이 순순히 이런 자리에 나올 놈이 아니라는 상황은 그 상대 여자에게도 비슷했던 거야. 웬만큼 다 알만한 처지들인데, 괜히 서로 이런 자리에서 얼굴 마주쳐 봐야 곧바로 닥치는 다음 순서로 넘어가기 십상이고…… 후후. 알아서들 피하는 방법이 있었군. 민준은 이제 눈에 띄게 느긋한 태도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바로 앞에서 도대체 정체를 모르는 여자가 자신을 열심히 따라하며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관자와 같이 겨우 포크에 찍은 토마토 조각이 떨어지자 조금 놀란 듯 미세하게 찡그리는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살짝 크기가 다른 두 눈은 새로운 자리에 맞닥뜨린 순수한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고, 조심스럽게 음식을 맛보는 입술은 상당히 세련된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다. 괜찮네. 적어도 식상한 페이스는 아니군. 저 정도 퀼리티의 대타를 구하면서 지불한 비용은 얼마나 될까? 왠지 쓴 웃음이 나왔다. 후후. 민준은 이제 슬슬 이 상황이 재미있어지기까지 했다. 어차피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여자인데다 몇 시간만 지나면 영영 만날 일도 없을 테니,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시간만 때우면 그뿐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말도 쉽게 나오기 시작했다. 색다른 감흥에 젖어서, 아직 아무 낌새도 못 채고 다른 사람인 척하는 이 여자를 놀리고도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