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first’라는 성인사이트 회사를 만들어 감독 활동을 하는 설희에게 매일같이 치근덕거리는 존재가 있다. 유명 영화들을 다수 보유한 감독 남찬욱이다. 설희의 어린 시절 사연을 알고 있는 찬욱은 설희에게 ‘진짜 영화’를 만들라는 권유를 끊임없이 하게 된다. 설희는 찬욱의 제안에 구미가 당기면서도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하며 피하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헤어디자이너를 하는 친구 목희에게 헤어숍 단골 사모님의 소개팅 자리가 들어왔다. 목희는 자신이 소개팅을 잘못했다가 불똥이 튀길까봐 설희에게 넘기게 되고, 설희는 등 떠밀듯 소개팅 자리에 나가게 된다. 상대에 대한 이렇다 할 정보도 없이 몸만 내던져 지는데, 상대는 깐깐하기 짝이 없는 기계 같은 남자, 더군다나 그 직업이 변호사다. 이름은 문계성. 설희는 그가 무서울 수밖에 없다. 성인물은 엄연히, 불법이기 때문이다.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이상야릇한 두 남녀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본문 중에서-

“제가 설희 씨를 처음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었는지 말했던 거, 기억나십니까?”
“절 처음 보았을 때요?”
“네.”
설희는 반사적으로 미간 사이를 좁혔다. 검지로 눈가를 살살 긁으면서 기억의 회로를 돌려보았다. 어젯밤 포장마차를 넘어, 길거리에 마주쳤던 것을 넘어, 아, 그래, 여기다. 프랑스 레스토랑. 송아지안심살과 와인 맛이 일품이었던 곳. 그런데 폭탄 발언이 한두 개가 아닌지라 이걸 헤아리기도 뒷골이 당겼다.
계성은 어느 정도 회상의 거리가 비슷해진 것 같은 설희를 바라보며 더 없이 따뜻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 이 여자는 사기를 쳐서라도 내 옆에 두고 싶다.”
“……네?”
“라고 했었습니다.”
따끔한 일침과도 같은 말이 정신없이 난장판을 치던 설희의 가슴을 잠재웠다. 동시에 설희는 숨을 죽였다. 미묘하게 전율을 일으키는 눈으로 계성을 바라보았다. 계성은 얼음이 녹아가는 에스프레소 잔의 옆으로 들고 있던 종이를 내밀었다. 이에 저절로 시선이 떨어뜨려진 설희는, 이내 몇 글자를 읽다가 그만 헛기침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넘어간 줄 알았던 얼음 조각들이 그대로 사레로 걸린 것 같았다. 형법이네 뭐네, 징역부터 벌금까지 보기만 해도 오금을 저리게 하는 글자들이 칼날을 세우며 들이대고 있었다.
설희는 이제 눈에 띄게 동요하는 눈을 들어 계성을 바라보았다. 계성은 그런 설희를 안심시키려는 듯 한층 더 안정적인 눈길로 살짝 턱 끝을 끌어당겼다.
“설희 씨라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닐 것 같아서 해보려고 합니다.”
“……뭘요?”
설희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나 싶던 계성은, 이내 너무도 싱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설희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허한 숨을 내쉬게끔 하였다. 그 어떤 에스프레소보다도 깊고 그윽했다.
“제가 설희 씨의 직업을 모른 척 하고 설희 씨가 절 계속 만나주신다면, 이는 서로에게 이득이 있는 장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하지만, 제가 설희 씨를 이 종이로 얽매려고 한다면……. 그것도 결코 무시 못 할 패가 될 것입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 설희를 제대로 간파하고 있음이 분명한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