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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미국에서 작가로 우뚝 설 포부를 가지고 예일대를 중퇴한 당당한 작가 지망생, 조아인.
‘할리우드의 악동’이라는 칭호 아래 오만함과 이기심으로 온 몸을 감싼 남자, 에릭 브라이드.
우연을 가장한 운명적인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그들의 사랑이야기.

<본문 중에서>

“의무적일 필요는 없어요.”
남자의 웃음이 한 순간에 끝났다. 마치 아인이 일어나길 기다린 마냥 간결하고 딱 떨어지게 멈춰졌다. 그리고 따뜻한 기운이 담긴 손으로 아인의 손목을 잡았다. 크고 부드러운 팔찌를 찬 느낌이었다. 까칠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따뜻했다. 아인은 반사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당신이 귀여워서 그런 거예요. 기분 나빠하지 말아요.”
“앨범 안 사면 귀여운 사람이 되는 건가요?”
“뭐, 그렇다고나 할까.”
“네?”
그가 일어났다. 남자는 이제 서야 아인을 보았다. 키가 참 컸다. 아인이 목이 빠져라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눌러쓴 모자의 안으로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모자에서 삐져나온 금발이 찰랑거릴 뿐이다.
남자는 잡고 있던 팔목을 놓으며, 아인의 앞으로 움직였다. 동시에 시원하면서 달짝지근한 향기가 풍겨왔다. 아인은 향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비싼 향수를 쓰는 것 같았다. 코에 착 달라붙는 좋은 향기였다.
“에릭인가, 뭔가 하는 놈의 앨범을 사러 죽어라 기다리는 여자들 보다, 여유롭게 바게트 빵을 뜯어먹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카페오레의 향기가 배어 있는 여자가 더 좋다는 소립니다.”
“…….”
“아주, 흥미롭죠.”
소곤거리듯 아인의 머릿속에 아로새겨진 말의 뒤로, 그는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뭘 하려는 의도인지 감 잡을 수 없는 아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도망쳐야 할 타이밍을 노리는데, 아인과 눈높이를 맞춘 그에게서 웃음소리가 났다. 얼굴에 홍조가 띈 아인을 뚫어지게 보나 싶더니, 그의 입술이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아인의 입술과 맞닿았다. 아인의 눈은 동공이 터질 듯이 올랐다. 뭔가 매끈한 것이 자신의 입가를 쓸어내리며, 묻어있던 바게트 가루를 말끔히 해치웠다. 간질거리고, 달콤했다.
“난 내일 이 시간에 올 겁니다.”
“…….”
“당신의 바게트 가루가 또 먹고 싶어졌거든요.”
이것이 망친 줄만 알았던 맨해튼에서의 첫날, 아인은 자신의 첫 키스를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