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 아빠. 제이미 리브
20살 딸. 지오 리브

부녀지간인지 연인인지 알쏭달쏭한 그들의 나이차이.
딸바보 아빠의 과보호와 20살, 끓어오르는 젊음을 주체 못하는 호기심쟁이 딸의 쫓고 쫓기는 제멋대로 싱글 라이프. 아빠의 과보호를 끊고 한국으로 가출해 버린 딸과, 그 딸을 찾아 한국으로 쫓아 들어온 아빠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옛날의 연인을 만나는 것도 제이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딸이... 금지옥엽 어화둥둥 곱게 키운 딸이, 천하의 몹쓸놈에게 정신이 빠지는 꼴은 더욱 못 볼일. 게다가 그 남자는 나와 1살밖에는 차이가 나지 않는단 말이야!

절대로, 순결하고 순진한 내딸을 망치도록 그냥 둘 수 없어!



<본문 발췌글>


“지오, 정말 식사 안 해?”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며 식사를 날라 온 할멈이 안타까운 듯 지오를 설득해 봤지만, 방 안은 암흑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생일날 아침 이후, 아빠와의 회담이 처참하게 결렬되 버린 후, 지오는 방에 들어와 문을 걸어 잠그고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요새 들어 한결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해진 20살의 아가씨의 마음을 마음대로 짓밟은(?) 아빠의 잘못이었다. 여기서 아빠에게 고분고분 무너지면 내 인생은 앞으로 늘 이렇게 되어 버릴 거야.
세상을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이렇게 갑갑하게 보호와 감시 속에서 결혼까지 아빠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게 될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아찔한 듯 머리를 감싸 쥐는 지오.

아빠의 마음은 십분 이해해지만, 이건 정말 아닌 것이다.
지오는 세상 구경을 하고 싶었다.
더 넓은 세계에 나가 더 많은 사람들을 경험하고 싶었다.
한국에도 다시 가 보고 싶었다. 아빠의 출장을 따라 몇 번 가 보긴 했지만 지오는 늘 내내 호텔 안에 있어야 했다.
제대로 서울 시내를 두 발로 돌아다닐 경험 따위는 할 수도, 해 본적도 없었다.
“독재도, 이런 독재가 없다니까. 젠장. 이번에는 질 줄 알아?”
제법 야무지고 대차게 벌써부터 주린 배를 움켜주며 침대에 누워 지오는 중얼거렸다.
단식 투쟁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뱃속에서는 천둥치듯 고함 소리가 우렁찼다.


“제이미, 어쩔라고 그래? 지오 말려 죽일 거야?”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할멈이 못마땅한 듯 제이미 옆에서 칭얼거렸다. 지오가 밥 한 끼만 안 먹어도 큰일이 나는 줄 아는 사람인데 애가 하루 종일 안 먹고 있으니 오죽할까?
할머니의 계속되는 채근에도 모른 척 책만 읽고 있던 제이미가 투덜거리며 책을 집어 던져 버렸다. 사실 위층에서 단식 투쟁 중인 지오 때문에 도통 손에 들어오지 않던 참이었다.
“한국 나이로 이제 20살인데, 지오도 숨이 콱콱 막히겠지.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수백 가지는 될 터인데, 너무 지오를 꽁꽁 묶어 두려 있잖아.”
“지오 털끝 하나도 다치는 꼴은 보지 못합니다. 그때도 그랬어요. 서경은 답답하다고, 숨 막힌다고 잠시 쇼핑하고 오겠노라고 나가서는…….”
아직도 9년 전의 악몽이 가시지 않는 듯 제이미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백만 번을 생각해도 위험하단 말입니다. 혼자 외국에 나가 생활을 해 보겠다뇨? 그냥 일반 가정에서도 걱정할 일인데, 하물며 지오는…….”
“정 그러면 몰래 보디가드라도 붙여 놓는 건 어떤지? 아 저러다가 꽃 같은 애를 시들시들 말라 죽일 셈이야? 이제 피어나는 꽃인데! 온실이 오죽 갑갑스러울까!”
“정말, 할머니까지 왜 그런답니까?
심란한 마음을 알아주지는 못하고 잔소리만 해대는 유모에게 제이미가 답답하다는 듯 힘없는 목소리로 짜증을 냈다.

자랄수록 서경을 쏙 빼닮아가는 지오를 보면서 매일매일 심난한 그의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엄마를 닮아가는 딸을 볼 때마다 그가 느끼는 죽은 아내에 대한 아픔과 미안함, 그날의 사고, 그리고 지오의 미래에 대한 걱정. 아직 젊은 그에게 그 보다 훨씬 젊은 딸의 미래는 늘 불안하고 걱정스러워 마음 졸이는 것을 세상에 그 누가 알아줄까나?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듯 할멈은 제이미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여 주며 한결 말투를 누그러트리며 입을 열었다.
“알우, 알아. 제이미가 서경 씨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그리고 그만큼 지오 아가씨에 대해서 걱정하고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우. 그래도 한창 나이의 애를 어쩌겠어, 타협을 해서 잠깐이라도 세상 구경을 하게 해 줘요. 언제까지 이렇게 끼고 살 텐가요? 시집도 보내야 할 테고…….”
“어림없습니다. 웬만한 놈은 지오 짝으로 턱도 없다고요.”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나쁘다는 듯 날카롭게 말하며 투덜거리는 제이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다시 그를 달래는 유모의 말에 제이미는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