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엇갈림에 흔들리는 사람들. 사랑으로 인해 서로에게 더 할 수 없는 아픔과 깊은 상처를 내고도 변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지독한 젊은 날의 사랑 이야기……
가흔.
아주 오래전, 날카로운 첫 키스를 빼앗아 간 그. 불한당으로만 기억되던 그가 교묘히 위장되어진 사랑의 감정을 뒤흔들기 시작하면서 평범한 삶이 유일한 목표였던 가흔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진지한 관심? 이런 유치한 장난이 당신한테는 진지한 관심인가보지? 그래, 당신이 그랬지. 나 같은 애들……그 알량한 자존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애들 세상에 수두룩하다고……그래, 그러니 제발 그 수두룩한 애들 중에 골라.”
정후.
차갑고 제 멋대로의 그가 처음 그녀에게 다가 설 때만 해도 그건 분명 소녀에서 여자로 변한 그 긴 세월에 대한 단순한 흥미였었다. 그렇게 치부해보려 했지만 어느 순간 그는 그녀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로 변해있었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싸구려 옷을 입고 뭘 하고 있어도 늘 그 꼬맹이는 나에게는 없는 그런 빛이 나. 단 한번도……따뜻한 눈길 한번 준 적 없던 그 아이의 그 차가운 눈빛조차 난 늘 목말라. 아마 그때부터, 그 아이의 입술을 처음 느낀 7년 전부터 내 눈이……내 심장이……그 아이만을 쫒아.”
현수.
노력 형 수재. 어머니의 기대와 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서투름 때문에 그는 늘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뒤늦은 후회와 결심이 또 다른 사랑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만다.
“가슴속에 품은 채 너무 소중해서 다가갈 수 없었어. 나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나 때문에 아파할까봐, 내 사랑으로 상처받을까봐……그렇게, 그저 그렇게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사랑을 네가 알아?”
-본문 중에서-
쉴 새 없이 한참을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소파에 기대어 우두커니 앉아있던 여자의 까만 눈동자가 너무도 깊게만 느껴진다. 누구인지를 알기에 또한 쉽게 끊어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낮은 숨 호흡을 내쉬던 여자가 수화기를 드는 순간, 곧이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샤워하느라……벨소리 못 들었어.”
나지막한 여자의 목소리에 할말을 잊은 듯, 아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남자가 할 말을 잃은 듯 그저 거친 듯 낮은 숨소리만을 내자 순간 여자가 입가에서 탁한 목소리를 흘러나온다.
“……전화하지 말랬잖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여자의 목소리가 남자의 심장 깊숙한 곳에 각인되어지고 있었다. 알고는 있지만 분명 네가 그리하라 했지만 네 목소리조차 듣지 않으면 나……불안해서 죽을 것만 같은데……차마 뱉지 못한 말을 도로 삼키던 남자의 입가에서 낮은 떨림을 지닌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미안해……”
무엇이 미안하다는 거니? 당신을 그렇게 보내는 사람은 난데, 내가 미안해야 하는데, 왜 당신이 아파하는 거야? 그러지마……그런 모습 보이지마…….자신조차 들리지 않을 듯 그렇게 작은 한 숨을 내뱉던 여자가 씩씩한 척 밝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전화선 빼놓을 거야.”
“어디……안 갈 거지?”
대답을 강요하는 듯한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여자의 심장을 아리게 만든다. 아무 말도 해 줄 수가 없는 걸, 당신이 원하는 그 말은 내가 해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왜 이렇게 바보같이 물어보는 거니?
“오늘은 엄마한테 갈래.”
“너 없이 나 안 된다는 거 알지? 나 돌아올 때까지 어디 안 갈 거지? 약속해!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고……”
애원하는 듯한, 대답을 강요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여자의 머릿속을 뒤 흔드는 순간 굳은 다짐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듯 흔들린다. 그때, 수화기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가 잠시 동안의 환상을 차갑게 깨트려 버리는 순간, 이제 모든 것을 제 자리로 돌려 놔야 한다는 이성의 소리가 여자를 차갑게 흔든다.
“잘 다녀와.”
“가흔아, 잊지 마. 넌 내 심장이야.”
당신도 내 심장이야……차마 내 뱉지 못한 말을 지긋이 삼키던 여자의 입가에 처연한 미소가 퍼진다.
“전화 끊어. 늦겠다.”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에 아쉬운 듯 남자가 전화를 끊어버리자 차갑게 들려오는 수화 음 만이 여자의 귓가에서 어지럽게 맴돌고 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이제는 그 차가운 수화 음 마저 들려오질 않음을 느끼는 순간 여자의 입가에서 탄식 같은 한숨 소리가 짙게 흘러나온다.
“사랑해.”
힘겹게 내뱉는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깊고 까맣게만 보이는 여자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두 뺨 위를 스치듯 지나가 버린다.
“이말 못해줘서 미안해.”
쪈
쪈.
외모나 이름. 그 어떤 것에서도 특징조차 찾을 수 없는 평범함으로 인해 학창시절 누구나 있는 흔한 별명조차 없던 지극히 평범한 한 여자. 그나마 늘 머릿속에서만 가득차있던 오만가지 잡(?)생각을 글로 풀어내면서 평범함을 조금씩 탈피하는 중. 현재 로망띠끄와 다음까페 [소설이 주는 즐거움에서-쉼터]에서 활동 중.
완결작 : 로망띠끄[슬픈 변명]
연재중 : 소설이 주는 즐거움 [가시나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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