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야.”
시동을 켜자 미지근한 에어컨 바람이 나왔다.
“응?”
재민이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너 운동 좀 했으면 좋겠다.”
수는 재민의 말뜻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다.
‘이게 뚱뚱한 사람들의 자격지심일까?’
만일 그녀가 예전처럼 날씬했다면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재민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특히 혜린을 보고 난 후라 더욱 그랬다.
“나 보는 거 힘들어?”
수의 말에 재민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시무룩한 표정이 어두운 낯빛 때문에 더욱 아파 보였다.
“네가 아픈 거, 그걸 보는 게 싫어.”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져 재민은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수의 모습이 떠올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손과 발이 저릿저릿했다.
“나…… 정말로 너 아픈 거 다시는 보고 싶지…….”
입술이 바들바들 떨려 재민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재민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집스럽게 앞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창백한 수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재민 씨?”
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갑자기 아픈 게 보기 싫다니! 금방이라도 울 듯 일그러진 얼굴을 한 재민이 두 눈을 부릅뜨고 뚫어져라 앞만 응시하는 것도 그녀에겐 낯설기만 했다.
“다시는 너 아픈 거 보고 싶지 않아. 아프지 마. 다시 아플 거면 지금 사라져.”
다시는 수의 죽음 따위 보고 싶지 않았다. 텅 빈 거리에 혼자 남겨진 듯한 그 느낌을 다시는 받고 싶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앞뒤를 잘라먹은 재민의 말을 수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갑자기 변한 재민의 태도가 그녀를 불안하게 할 뿐이었다.
“한 번이면 족해. 그런 끔찍한 경험은.”
재민의 목소리가 위험할 정도로 낮아졌다.
“상처 하나 없이 누워 있는데, 잠을 자는 것 같은데…… 네가 죽었대.”
그때의 극심한 공포가 되살아나 재민을 감쌌다. 반년도 훨씬 지난 기억이었지만 재민에게는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깔깔거리며 웃을 것 같은데…… 죽었대.”
다시 떠오르는 악몽과도 같은 기억에 핸들을 꽉 쥔 재민의 손 관절이 하얗게 되었다.
“네가 죽었다는 실감이 하나도 나지 않는데…… 넌 없더라.”
속삭이듯 가만가만한 음성이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해 더 애절하게 느껴졌다.
“제길. 넌 아무 곳에도 없더라. 미친놈처럼 너랑 닮은 여자만 보면…… 머리칼만 닮아도 미친놈처럼 달려가는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거…… 후우!”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아픈 추억에 재민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며 숨을 내쉬었다.
“정말 싫어.”
목적지 없이, 그저 잊기 위해 길거리를 달려가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 재민은 싫었다. 수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 긴 시간, 그는 죽음보다 더 큰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다시 죽으려거든 여기서 끝내. 다시는 그 고통 맛보고 싶지 않아.”
“재민 씨…….”
흔들리는 수의 음색에 고통이 잔뜩 묻어 있었지만 재민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오로지 수의 죽음이 남겼던 수많은 상처와 고독감만이 느껴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