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운(雲)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한 시간 이십분. 나는 아직 사십분쯤은 떨리는 가슴으로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이 오기를, 나에게 당신이 오기를, 숨쉬는 것도 버거울 만큼 기대합니다. 내게 당신은 독한 양주와도 같이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본문 중에서>
그를 기다리는 시간, 한 시간 남짓. 아직은 지루함이 찾아오지 않았다. 한참 사방놀이를 하던 그녀는 그것에 지쳐 걸음을 옮겼다. 횡단보도 앞에 선 그녀는 맞은편의 신호등을 보았다. 붉은 신호등이 점등된 횡단보도 앞으로 차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너머, 하나둘씩 사람들이 불어났다.
비가 오려나? 우산이 없는데. 수영은 바쁜 눈으로 신호등을 보았다. 붉은 색이 점등된 신호등은 좀처럼 바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동동 발을 구르며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정말 비가 오려나? 힐끗 하늘을 보았다. 터무니없이 밝은 하늘, 지나치게 밝은 햇살이 그녀를 비웃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한껏 청푸르기만 하늘이 맥없이 맑았다. 높아서, 지독하게 높아서 그악스럽게 밝았다. 손을 뻗어 닫을 수 없는, 기어이 그럴 수 없는 하늘이었다. 문득 가슴이 덜컹였다.
비가 오려나? 우산이 없는데. 같은 생각만이 그녀의 뇌리를 채웠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는지, 도로위로 사람들이 채워졌다. 오고, 가고. 바닷길이 열리기라도 한 양, 사람이 떼를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그네들의 머리위로 부신 빛은 자꾸만 시렸다. 문득 가슴이 서걱댔다.
사람들이 비워진 도로위로 차들은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덮쳐들었다. 경적소리도 없이 잠잠하게 도로를 채웠다. 5차선도로, 그 한복판의 신호등은 여느 때와 달리 참 짧았다. 많은 사람들이 바뀌고, 또 바뀌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여기는 왜 왔을까? 무엇을 위해? 빠르게 바뀌는 사람들 속에서 수영은 한참동안 생각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어떤 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비가 오려나? 정말 그럴까? 맥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리게 푸른, 그래서 결코 비가 내리지 않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뭉게구름이 방긋 웃으며 그녀를 조롱했다.
“멍청히 서서 뭐하는 거야?”
누군가 그녀를 붙들고 말을 걸었다. 수영은 멍청한 얼굴로 눈을 꿈벅거렸다. 누구? 얼마쯤 흐트러진 머리에 반가운 눈을 하고 있는 낯이 익은 누구? 가벼운 셔츠차림의 반가운, 그래서 익숙한 누구?
민연경
* 2001년 7월 [대련]으로 인터넷에 글쓰기 시작.
* 현재 로망띠끄에서 “별리”로 활동(indigoin@korea.com)
* 단편 [비녀꽂은 여자], 대련, 위험한 계획, 그리 운(雲), 서리를 머금은 단풍 외 단편
* 현재 [사랑, 그것은……]을 집필중
* 홈페이지 : http://indigo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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