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낯선 북소리''''''햇살이 지독히도 밝았다. 떼 지어 몰려다니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 햇살은 속속들이 밝았다. 그 웃음 속에 초록의 잔디는 싱그러웠다.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는 돗자리의 사람들은 때로 아이들의 웃음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투명한 파란 하늘, 싱그러운 초록 잔디. 늦은 봄날의 오후는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드넓은 공원 곳곳. 어디에도 슬픔은 없었다. 그럴까?'' 수영은 시계를 바라보다 다시 아이들을 찾았다. 공놀이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은 공 하나에 달랑달랑 예닐곱이 열려있었다. 개구지고 어딘지 어설퍼 보이는 아이들은 곧잘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한 시간 이십 분. 누군가를 기다리기에 충분히 족한 시간이지만, 지루하기에도 충분히 족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앞으로 사십 분쯤은 더 기쁜 얼굴로 기다릴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생각만으로 금세 그녀를 기쁘게 만들며, 동시에 절망에 빠트리는 사람을 기다리는 그녀는 지금 행복에 겨운 얼굴이었다. '' 와르르, 때지어 웃음이 터졌다. 넘어진 아이하나가 초록잔디를 그러쥐고 오기품은 눈으로 발딱 일어서고 있었다. 기어이 공을 차지하고 말겠다는 독기가 고스란히 담긴 눈이었다. 그 눈에 수영이 몸을 일으켰다. 순간 못된 심술이 듬성듬성 그녀의 마음을 채웠다.'' 그리고 수영은 아이들 속으로 채워졌다. 서툰 몸짓 속에 더 서툰 몸짓으로 공을 쫓아 뒹굴었다. 한참을 뒹군 후에야 그녀는 웃음을 물고 공을 차지했다. 못된 심술이 기어이 독기품은 아이의 눈에 눈물을 만들고 있었다. '' “아줌마, 미워.”'' 불가항력에 대항하고 실패한 아이의 오기가 새록새록 흘러내렸다.'' “뺏어봐. 할 수 있으면 해볼래?”'' 밝은 웃음을 물고 그녀는 아이를 조롱했다. 그때부터 독기품은 아이와 못된 심술로 슬금슬금 웃음을 내뱉고 있는 그녀의 장난이 시작되었다. 요리조리, 아이의 오기를 피해가며 그녀는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깨끗해 돗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아이의 성난 얼굴을 개의치 않았다.'' 그녀의 웃음은 청명했다. 아이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이의 얼굴이 달아오를수록 그녀의 웃음이 높았다. 장난을 뒤집어 쓴, 그래서 마냥 즐거운 웃음이었다.'' 그녀의 웃음이 깊어질수록 시간이 흘렀다. 문득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시계를 살피는 그녀는 이전의 미소는 어디로 흘려버리고 얼마쯤 아련한 얼굴로 공원입구를 살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아이의 거친 몸이 덮쳐왔다. 예상치 못한 기습으로 그녀는 의지와 상관없이 한참 잔디밭을 뒹굴어만 했다. '' “애 데리고 뭐하는 거야?”'' “건우씨!”'' 아직도 공을 꼭 껴안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거짓말처럼 해사해졌다. 마치 일년쯤 떨어져 있던 연인과 재회라도 한 듯 그녀는 감격스러운 얼굴이었다. 아무렇게나 엉켜있는 머리하며, 그 머리에 붙어있는 잔디까지도 그녀의 미소와 함께 웃고 있었다.'' 그 사이 아이는 그녀의 품에서 공을 뺏어갔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외쳤다.'' “내가 뺐었어요!”'' “맞아.”'' 그녀는 선선히 패배를 인정했다. 그것에 아이는 오히려 서운한 얼굴로 사라졌다. 그런 아이의 뒤통수를 향해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애들처럼.”'' “왜? 재미있잖아. 저 녀석과 놀아서 아주 신났어.”'' 수영은 밝은 미소를 물고 말했다. 그러다 생각이 난 사람처럼 시계를 확인했다. 여전히 웃음이 걸린 그녀의 얼굴이 한층 즐거워졌다.'' “한 시간 오십 분! 좋았어.”'' 웃음을 물고 외친 수영은 냉큼 그의 팔에 팔짱을 끼었다.'' “밥은?”'' “아직.”'' “여태? 건우씨, 이 시간까지 밥 안 먹으면 큰일 나는 사람이잖아?”'' 수영은 놀라운 일이라도 되는 양 빵빵하게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이내 몸을 털었다. 그러나 그녀가 몸을 다 털어 내기도 전에 아이가 다가왔다. 아이의 어깨가 요란하게 들썩였다.'' “왜?”'' 수영은 갑자기 다가온 아이가 의아했다. 그런 수영에게 아이는 당당하게 말했다.''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뭐?”'' 느닷없는 말에 수영은 황당한 얼굴이었고, 건우는 제법이라는 얼굴로 웃음을 흘렸다.'' “지금까지 내가 놀아줬잖아요. 안 그럼 아줌마 울었을걸!”'' 그 한마디에 수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밝게 외쳤다.'' “좋아. 아줌마가 아주 맛있는 아이스크림 사줄게.”'' 그녀는 아이의 자그마한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내내 그녀의 얼굴에 머물러있는 미소와 함께 외쳤다.'' “건우씨, 잠깐만 기다릴래? 이 녀석 아이스크림 좀 사줘야겠어.”'' 고개를 끄덕이는 건우의 얼굴에는 얼마쯤의 미안함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햇살처럼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드는 그녀의 미소에 그것은 쉽게 사라졌다.'' “기다려. 내가 건우씨 아이스크림도 사올 테니까.”'' 깨끗한, 그래서 아이의 웃음과 별반 차이가 없는 미소였다. 그녀가 그렇게 저만치 사라지자 건우는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축축한 기운이 남아있었지만 잔디밭은 깔끔했다. 상쾌한 바람이 그를 쓸고 지나갔다. 그러자니 얼핏 졸음이 쏟아졌다.'' 며칠동안 새우잠으로 버텼으니 그럴 법도 했다. 지난 일주일동안 그는 세 군데의 도시를 다녀야 했다. 하수종말처리에 대한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관련전문가를 찾아가 하수도에 섞여있을지 모를 폐수에 대한 검사를 부탁하고 돌아왔다. 으슥한 밤에 움직여야 했던 그는 늘 잠이 부족했다.'' 사무실에 돌아와서도 기사를 마무리 짓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다. 햇살은 적당히 따뜻하고, 바람은 알맞게 서늘해 졸음오기 딱 좋은 오후였다.'' 깜빡 잠이 들었던지 몸이 가벼웠다. 그리고 눈을 뜬 그의 앞에 수영이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많이 피곤해?”'' 걱정 섞인 얼굴로 그녀가 측은하게 물었다.'' “괜찮아.”'' “건우씨 피부가 미워졌다. 잠 좀 자고 일해라.”'' “괜찮다니까.”'' 건우는 그녀의 말에 머쓱해졌다. 며칠간의 수면부족으로 튀어나왔을 광대뼈와 덥수룩한 수염이 충분히 피곤해 보일 것이다. 턱 끝을 매만지던 그는 안쓰러운 그녀의 눈빛에서 시선을 피하던 중 그녀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보았다.'' “그건 뭐야?”'' “어? 아, 이거. 건우씨 주려고 샀어.”'' 수영은 제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그제야 생각해내고 내밀었다. 그러나 그것은 벌써 그녀의 손위로 절반쯤 흘러내리고 있었다.'' “얘가 왜 이렇게 돼 버렸지? 원래는 예뻤는데.”'' 그녀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또 아이스크림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가자. 배고프다.”'' 건우는 그녀의 의아한 얼굴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냉큼 팔짱을 끼었다. '''''''2장 고백''3장 꽃반지''4장 깨진 거울''5장 피안''6장 보고 싶다''7장 그리운''8장 풍경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