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차가운 빗줄기 사이에서 만난 소녀. 마음 한켠에 묻어 두었던 과거의 인연을 살리기 위해 진혁은 이제 서인에게 다가가기로 하는데…….
-본문 중에서-
빈틈없는 톱니바퀴처럼 착착 계단을 밟아 가던 그녀의 계획에 심각한 틈이 생겼다. 세진제약의 은진혁! 그 남자가 나타나고부터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이기환 건을 끝으로 한동안 맞선이 잠잠할 것이라는 기대를 깨고 2주 연속 선 시장으로 끌려 나갈 신세가 됐으니 당연하다. 다행히 다음 주로 잡힌 대진그룹과의 약속이 취소된 게 그나마 희소식이라면 희소식일까. 상대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3주 진단이 나와 맞선은 무기한으로 연기되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왕이면 은진혁이 당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아쉬움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선이었다. 어쨌든 바보 같은 짓거리 때문에 대리 출석도 안 되는 수업을 빠진 형세이다 보니 하루 종일 악몽의 연속이었다. 깨끗이 세팅이 된 학교 앞 레스토랑의 식탁에서 물 컵을 엎었고, 포크를 떨어뜨렸으며, 주문을 잘못했다. 게다가 저 꼬맹이들은 뭘까? 집에서 나와 지하철을 탈 때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같은 역에서 내린 것은 물론 레스토랑 안까지 따라 들어오자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지금 미행을 당하고 있다. 여태껏 남자들이 그 상대였던 것에 반해 이번은 촌스러운 깻잎머리와 앙증맞은 교복으로 중무장을 한 여고생이었지만 저쪽이 이쪽에게 볼일이 있는 것은 자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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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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