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저기 저 누나 너희 누나 아냐?”'“서빈이 누나? 어디 어디.”'우종이 자식이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면하려는 그의 얼굴을 잡아 좌로 각도를 튼다. '“그치, 내 말이 맞지 황서빈?”'서빈은 도수가 높아 두꺼운 안경알을 위로 살짝 들었다 내리며 고개를 끄떡였다. 손질이 잘된 화단과 서른 개의 계단을 지나 이어진 중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정렬시키고 있는 여학생은 누나가 틀림없다. '“히야, 너희 누나 진짜 예쁘다.”'어느새 친구 녀석들이 누나에 대해 주워들은 정보를 경쟁이라도 하듯 침을 튀겨 가며 설전을 벌인다. 서빈은 이마가 패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공부도 되게 잘 한다며?”'“마, 그러니까 전교 부회장이지. 내년에는 연서중 최초로 여자 회장이 선출될 거라고 우리 담임이 그러더라.”'“근데 저 누나, 고딩 형들도 반해서 막 쫓아온다던데, 정말이야?”'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딩 형들도 쫓아오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대답 역시 안경알을 올렸다 내려놓는 것으로 친구들의 시선을 쫓았다. 그리고 누아인 서인이 있는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확실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검도를 시작한 탓인지 누나의 자세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키 큰 애들이 허리를 굽히고 목을 구부정하게 해서 걷는 것에 비해 누나의 허리는 대나무처럼 꼿꼿했고, 어깨선도 항상 180도 수평을 유지했으며, 시선은 전방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12월에 내리는 눈처럼 하얀 얼굴, 흰자위를 가득 메운 검은 눈동자, 조각칼로 깎은 것처럼 오뚝한 코와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붉은 입술은 달걀형의 얼굴과 조화를 이루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보다 3년 먼저 태어나 누나라는 직함을 가진 황서인은 아직 몽정도 하지 않은 친구 녀석들까지 헤, 하고 입을 벌릴 만큼 이 일대에서 유명하다는 것. 아, 물론 단순히 예쁘기만 했다면 아이들 사이의 인기가 있는 것으로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누나는 학교, 학원 선생님들은 물론 경쟁 상대인 아이들의 학부모까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두뇌와 바른 몸가짐으로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스타였다.'“야, 이러다 수업 늦겠다. 얼른 가자. 예비 종 쳤어.”'주찬이의 말을 필두로 애들이 우르르 움직인다. 친구의 꼬리를 따라 움직이던 서빈은 슬쩍 뒤로 빠졌다.'“황서빈! 안 가?” '고함을 치며 손짓을 하는 친구에게 서빈은 간단히 대꾸했다.'“먼저 가. 누나한테 깜짝 잊고 안 준 거 있다.”'“늦으면 담임한테 혼나니까 얼른 들어와.”'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떡인 서빈은 중학교 본관 건물 앞에서 횡 하니 펼쳐진 운동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운동장을 메우고 있다. '서빈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하얀색 윗도리에 파란 반바지, 무릎까지 올라오는 하얀 양말에 보세제품이지만 10만원을 호가하는 나이키 운동화 부럽지 않게 깨끗한 운동화를 신고 서 있는 모습은 군계일학이요, 백미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지켜봐도 이제는 자랑스러움을 느끼기보다 한쪽 가슴이 아련하게 저려오는 서빈이었다. '사실 남들은 완벽하다고 칭찬을 하지만 누나가 그렇게 되기 위해 쏟는 노력과 자기억제는 무시무시했다. 완벽하지 않으면 누나가 할아버지와 큰엄마한테 책잡힌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초긴장 상태로 자신을 채찍질했고, 손에서 책을 놓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누나의 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서빈은 누나에 대한 칭찬을 마냥 웃으며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히려 하루 빨리 어른이 되어 누나가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고, 사촌 누나들이나 할아버지, 큰엄마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도록 해 주고 싶다. '누나보다 11센티미터나 작고 근육도 없는 약골이지만 누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아빠도 떠나면서 당부하지 않았던가?'서빈이, 넌 남자니까 아빠 없는 동안 누나를 지켜야 해. 약속할 수 있지?'말로 한 것은 아니지만 눈으로 읽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약속을 했다. '아쉽게 걸음을 옮기며 서빈은 다시 한 번 속으로 다짐했다.'‘정신 차려, 황서빈. 누나를 지킬 사람은 너밖에 없다니까!’'그의 다짐에 화답이라도 하듯 파란 하늘은 따뜻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