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앞에 앉은 녀석이 마음에 든 건 아니었다.
아니, 보통 때 같으면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대번에 잘랐을 것이다.
몹시 어려보이는 데다가, 벌레 따위 앞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여자처럼 곱상하게 생긴 얼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위급(?)한 상황에서 구해줄, 좀 더 듬직하게 생긴 도우미를 원했다.

“이 녀석, 어쩐지 수상하다.”
사랑을 부르는 그 이름…… Mr. Maybe


「등장 인물」

민영후(33세)

일찍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음악 시상식에서 작곡상을 휩쓸 만큼 그 능력을 인정받은 천재 작곡가. 그의 곡은 사람들의 잃어버린 감성을 일깨울 만큼 감미롭고 매혹적이다. 신인 작곡가와 가수들은 그를 찬양하고 톱가수들은 그와 작업할 수 있다면 모든 스케줄을 제치고 달려올 만큼 열광한다. 그만큼, 그의 곡은 신인가수들에게 엄청난 기회이자, 톱가수에게는 인기의 가도를 지속시킬 수 있는 보증수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작곡가로서 입지를 다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Mr. M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설립. 신인 발굴, 가수 매니지먼트, 음반기획과 제작 분야에 진출, 사업가로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게다가 그의 외모는 대한민국 미혼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만큼 세련되고 출중하다.
그러나 그의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저을 만큼, 대단한 완벽주의자이며, 상당히 까다롭고 살벌할 만큼 냉정하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어린 시절부터 치열하게 살아온 탓에 형성된 피상적인 모습일 뿐, 그의 내면은 누구보다 감성적이며 섬세하고, 예민하다.
더러운 건 못 참는 깔끔한 성미이며, 외식보다 집에서 해먹는 밥을 좋아하는 토속적이고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미식가이다. 그러나 청소 잘하고 요리 잘하는 도우미를 구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만큼 자신의 기준이 까다로운 건 생각지 못하는 이 남자는 오직 도우미와 그 회사만을 탓하고 있다.
결벽증이 있을 만큼 깔끔하고, 일류 호텔 주방장도 두 손 들게 만든 까다로운 미식가이자 자신의 사생활만큼은 철저하게 보호받고 싶은 이 시대 최고의 독신남 민영후는 과연, 자신이 원하는 도우미를 구할 수 있을까?

손정우(25세)

웬만한 여자들은 올려 볼 정도로 큰 키. 운동과 노동으로 다져진, 탄력 있고 호리호리한 몸매. 지나가는 여자들이 한 번씩 돌아볼 만큼, 하얗고 선이 고운 미소년의 외모. 과묵한듯 항상 닫혀 있는 입매는 다부져 보이고 두 눈은 총명하게 빛난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한 여자이다. 머리는 귀찮아서 자르는 것뿐이고 바지는 편해서 입고 다니는 것뿐이다. 자신을 종종 남자로 오인하는 여자들로 인해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모습을 바꿀 생각은 없다.
세상은 무서운 곳이다.
어설프고 약한 빈틈을 보이다간 큰 코 다치는 게 세상이다. 그녀는 이 비정한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그래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남자로 오해 받더라도 강해보이고 싶었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만큼 여유 있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눈덩이처럼 불어난 아빠의 빚이 그녀를 덮친다. 그녀의 아르바이트 수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고 아빠는 미안하다는 말만 달랑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안 그래도 말수 적은 그녀의 입은 굳게 다물어지고 별처럼 빛나는 영민한 눈동자엔 슬픔이 가득하다. 아빠가 아무 걱정 없이 무사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
무슨 일이라도,
설령 그 일이 남자가 되는 일이라도.

주 빈(29세)

‘Mr. M'이 배출한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감미롭게, 혹은 폭발할 듯 대중을 사로잡는 가창력은 타고났다고 할 만큼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한 번 들은 곡은 바로 부를 만큼 기억력이 좋고 비보이 출신인 만큼 춤에 대한 감각도 뛰어나다.
게다가 그는 머리가 굉장히 좋은 편이다. 원하고자 하면 쟁취하고자 하는 승부근성도 뛰어나다. 첫 앨범도 성공적이었지만, 두 번째, 세 번째는 엄청난 대박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와 민영후가 환상적인 파트너라고 한다.
“파트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누가 저딴 녀석이랑.”
그렇다 주빈은 민영후를 싫어한다. 스타가 되면서 자기 할 말이 커진 그의 의견에 사사건건 반대를 하는 민영후는 어느 순간, 주빈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다른 사람들에겐 친절한 편이지만 민영후만 보면 뒤틀리고 꼬인 심사를 완전히 감출 수 없다. 어서 빨리 민영후와의 계약이 끝나길 기다릴 뿐이다.
신사적이고 세련된 매너, 남자답고 지적인 마스크, 달콤한 목소리.
그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여자를 멋지게 꼬시는 기술을 알고 있다. 모르는 척, 무심한 척 하지만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걸 알고 있고 그 사실을 꽤나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걸 이용할 만큼 비열한 바람둥이는 아니다.
사실 그는, 거울을 볼 때마다 황홀해지는 심각한 자뻑 증세가 있고, 춤과 운동 외에는 땀 흘리는 건 죽어도 싫어하며,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언제나 마스크 팩을 붙이고 있을 만큼 자신의 피부를 아끼는 섬세한 남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천하의 주빈이 꽂히는 녀석을 만났다.
어처구니없게도 남자란다.
게다가 민영후의 가사 도우미라니.
드디어 나의 촉에 이상징후가?


「본문 중에서」

영후는 내키지 않은 얼굴로 상대방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저 형식상 질문 몇 개만 하고 돌려보낼 생각으로.
“도우미 경력은 얼마나 되지?”
망설이던 정우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입니다. 하지만 살림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뭐야, 이 녀석?’
상대방의 대답이 마음이 들지 않은 영후는 불쾌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달라. 달라도 크게 다르지. 가사 도우미의 최종목표는 ‘고객감동’이야. 단순한 집안일과 비교하다니 벌써부터 자세가 불량하군.”
잠자코 있던 정우가 조용한 얼굴로 말했다.
“집안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진심이 아니면, 최선을 다할 수 없으니까요. 도우미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경험이 적지만… 내 집처럼,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영후의 잘생긴 이마가 구겨졌다.
“이봐. 이건 나에게 대통령을 뽑는 것처럼 매우 중요한 일이야. 경험도 없는 주제에 입만 나불대는 도우미를 내가 고용할 것 같나?”
그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컴퓨터에 입력된 세션 녹음 연주를 플레이시켰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정적 속으로 부드러운 선율이 흘러들었다. 영후가 이제 그만 가보라는 말을 꺼내려던 찰나, 귓가로 빙빙 맴도는 멜로디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정우가 입을 열었다.
“피아노 연주가…… 사색적이군요.”
영후는 움찔 놀라며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지금 흐르는 곡은 신디사이저 음색의 인위적인 느낌을 지우기 위해, 피아노와 기타와 같은 아날로그적인 실제 악기의 연주를 넣은 선율지향적인 세션 녹음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샘플링 녹음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선율은 디지털 음색에 묻혀 피아노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거 흥미로운데…….
여태, 쌀쌀한 태도를 취했던 영후가 잠시 태도를 바꿔 상대방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피아노 소리가 어떻게 들리지? 웬만한 사람은 쉽게 들리지 않을 텐데.”
“자발적인 숨김이니까요.”
“그거 재미있군. 자발적인 숨김이라.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냥, 그렇게 들렸을 뿐입니다.”
영후는 어느새 팔짱을 끼고 정우의 말에 지긋이 귀 기울이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한데. 한 번 설명해보도록.”
“저는 도우미 면접을…….”
정우의 말에 영후가 못마땅한 얼굴로 귀찮은 듯 대꾸했다.
“그건 나중에 천천히 들어보도록 하지. 어서 하던 이야기나 해봐.”
잠시 주춤하던 정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연주가는 음악 컨셉을 잘 이해하는 거죠.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모든 소리들을 투명하게 빨아들이기 위한 연주라고 할까요. 하지만 흔들림 없이 섬세하게 음악의 빈 공간을 메워주고 있어요. 그 덕에 자칫 가볍고 단조롭게 들릴 수도 있던 선율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그럴싸한 세련된 음악으로 포장되는 거죠.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투명한 감각으로 음악 전체를 빨아들이는 작은 힘이야말로, 이 곡의 숨은 진가라고 생각합니다.”
영후는 이제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조곤조곤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녀석’의 모습이 묘하게 자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애써 냉정한 얼굴로 돌아와 수상쩍은 눈길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 너 가수 지망생이지?”
정우는 태연한 얼굴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는 가사 도우미 지망생인데요.”
그 말에, 영후는 다시 한 번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머릿속은 불과 몇 분 만에 매우 복잡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