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니요? 아빠! 저 어제 졸업했거든요? 싫어요!”
“뭐가 어째? 싫어? 나도 싫다. 결혼해!”
재훈과 윤영의 언성 높은 대화에도 미영은 옆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마치 일상적인 일인 양…….
“휴우, 너도 알다시피 지금 아빠 회사가 어제부로 마지막 부도가 났단다.”
“아! 아빠 회사가…… 마, 망했어요?”
“그래, 하지…… 뭐? 말을 꼭 그렇게 해야겠니? 그래, 망했다. 그러니까 결혼해!”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싫어요. 절대 결혼 안 해요. 겨우 졸업하고,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결혼이라니…….”
“아무렴 이 아비가 너 잘못되라고 결혼하라고 하겠니? 다 너 좋으라고 하는 거니까 결혼해! 그 이외의 말은 안 듣겠다.”
재훈은 말은 그렇게 했어도 죽어라 반항하는 딸 윤영을 보니 속이 탔다. 담배만 뻑뻑 피워대던 재훈은 옆에서 말없이 상황을 보고 있던 자신의 처 미영을 향해 눈짓을 했다.
‘휴, 결국 또 내 차지지…….’
미영은 재훈의 눈짓에 한숨을 쉬며 윤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흠, 흠! 윤영아, 있잖니. 아빠가 너에게 결혼하라고 하는 건 말이다. 크흠, 흠!”
“아, 답답해요. 빨리 말해 보세요? 혹 저를 어디에 팔아넘기기라도 한 거예요? 왜 말을 더듬으시는 거냐고요?”
자신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화들짝 놀라는 부모님을 보자 윤영의 눈빛이 번쩍였다.
‘뭐야? 무슨 반응이 이래? 진짜 나를 판 거야?’
잠시 숨을 고르던 재훈이 갑자기 소리를 꽥 질러댔다.
“야! 너를 팔다니, 니가 심청이냐? 내가 심봉사냐구?”
“여, 여보.”
“아니, 당신도 생각 좀 해봐. 같은 얘기라도 꼭 저런 식으로 해야겠어?”
“여봇!”
‘헉! 뭐라는 거야?’
윤영은 아빠의 말을 급히 자르는 엄마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리곤 궁금해 미칠 것 같다는 표정으로 엄마를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저기…… 윤영아, 팔았다는 표현은 좀 그렇고……. 왜, 너도 알잖니? 서진그룹 김 회장님 말이야, 아빠 친구 분. 너도 알지?”
“흠…….”
윤영도 안다. 그분은 둘도 없는 아빠의 죽마고우이자 아빠보다 더 자신을 예뻐해 주셨던 분이며, 그분의 큰아들은 그녀의 첫사랑이기도 했다.
윤영은 갑자기 몸속에서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허나 급히 그런 자신을 감추고는 여전히 표정을 굳힌 채 엄마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예요?”
“그 아저씨가 아빠 회사 부도를 막아주시겠다는구나. 게다가 투자까지 하시겠다니 얼마나 고맙니? 그런데…… 김 회장님이 작은 조건을…… 내거셨단다.”
“빨리 좀 말씀해 주세요. 속 터져 죽겠어요.”
“휴, 더 이상 무얼 감추겠니. 그래, 말하마. 용호 아저씨가 내세운 조건은…… 그 뭣이냐, 양가가 사, 사돈을 맺자고…….”
“끼아악!”
“어이쿠!”
“에구머니, 깜짝이야.”
딸의 입에서 터진 고함소리에 재훈과 미영은 소스라치게 놀라 엉덩이를 들썩였다. 두 사람 다 윤영이 너무 화가 나서 지른 소린 줄 알았는지 금세 얼굴이 납빛으로 변했다.
“윤, 윤영아.”
“이를 어째? 얘가 충격 먹었나 봐요. 그러게 내가 관두자 그랬잖아요. 나 몰라, 어떡해.”
두 사람은 동시에 윤영의 팔과 어깨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아빠!”
“그, 그래, 윤영아. 미안하다. 그냥 없었던…….”
“그 결혼 말이에요.”
“그래 알았어. 지금 당장 전화를…….”
“할게요. 하겠다고요.”
“응? 네가 하겠다고? 그래도 아빠의 친군데 아빠가 직접 해…….”
“아빠! 결혼한다구요, 결혼! 제 어렸을 때 꿈이 심청이었거든요! 심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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