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태현.

버려진 한 소녀에게 어쩐지 시선이 갔다. 그러나 가둬두고 싶지 않아서 풀어주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후회를 해 보았다. 곁에 둘 것을. 그것이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본 후회였다. 그래서 그녀를 다시 잡으려고 한다.



그녀, 정도희.

천사의 얼굴을 했지만 악마인 자를 알고 있다. 그도 같은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래서 그를 품게 되었지만 그는 머나먼 존재였다. 그래서 도망쳤다. 그러나 그를 보게 된 순간, 저는 아직 도망치지 못 했음을 알았다.



-본문 중에서-

하루 종일 도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해주고 싶었다. 그 어느 날 놀이공원에 갔던 것처럼.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도희는 그저 한 가지만 대답을 했다. 하루 종일 태현과 함께 있고 싶다고. 그렇기에 아침부터 그녀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하기로 하였다.

제일 먼저 아침을 같이 먹었다. 늘 있던 것이었다. 어느 날부터 아침을 먹지 않으면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태현의 일과에, 늘 처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스며들게 되었다.

“음, 그리고…….”

밥을 먹다 잠시 오전에 무엇을 할까 생각을 하던 도희는 빙긋 웃으며 대답을 했다.

“사람 많은 거리에서 손잡고 그냥 정처 없이 걸어 다니고 싶어요.”

누가 들으면 소박한 소원이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많은 것은 싫어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해주고 싶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간절했다.

옷을 갈아입고 난 후, 두 사람은 집을 나섰다. 도희가 말을 한 대로 사람들이 많은 길가로 향했다. 이미 걸으면서 손을 잡았다. 그리고 딱히 정한 장소도 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리가 아파 힘이 들면 보이는 아무 카페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식사도 되는 특이한 2층 카페였지만 점심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으므로 1층에 앉아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우리, 나중에 여기서 파스타도 먹어봐요.”

“그럴까.”

“네. 왠지 괜찮을 것 같아요.”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도희는 빙긋 웃다 점심 메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태현이 먹고 싶은 것을 먹자 하는 도희로 인해 그는 고민을 하다 오므라이스란 답을 했다. 그러자 잠시 도희의 콧등이 찡그러졌다.

“그건 제가 좋아하는 거잖아요.”

“네가 좋아하면 나도 좋아해.”

묘하게 고백 같은 대답에, 잠시 할 말을 잃은 도희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있었다.

카페에서 약 두 시간을 보내다 밥을 먹으러 일어났다. 여전히 손을 잡고 있었고, 선남선녀 커플로 보이는 두 사람에게 사람들의 시선은 쏟아졌다. 도희는 이것을 느끼기 위해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온 것이다. 연인이라는 단어를 가슴으로 잔뜩 느끼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사랑을 하고 있다고. 절대로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고.

근처를 돌아다니며 오므라이스를 파는 곳으로 들어섰다. 맛있어 보이는 곳을 찾기 위해 오래 돌아다녔지만 둘 다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손을 맞잡고 함께 나란히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기에.

“여기 맛있으면 다음에 또 와요. 아, 그런데 그냥 걸어와서 못 찾으면 어쩌죠?”

“가게 이름 보고 오면 된다.”

“아, 그러네요.”

깨달았다는 듯이 웃던 도희는 오므라이스가 나오기를 기다리다 핸드폰을 꺼냈다. 이내 카메라로 돌리며 태현에게 말을 걸었다.

“사진, 찍어 볼래요?”

“그래.”

어색했지만 태현은 도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가 보고 싶을 때마다 보려는 도희의 의도였다.

오므라이스가 나왔고, 두 사람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조용히 식사를 했다. 말을 할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기 때문이다. 함께 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다는 것을 오늘만큼 절실히 깨달아 본 적이 없었다.

계산은 도희가 했다. 지금만큼은 꼭 자신이 계산을 하고 싶다는 도희의 강력한 말에, 태현은 졌다는 듯이 그녀에게 계산서를 넘겼다.

“음…… 이건 꼭 해보고 싶었는데요.”

너무 유치할 것 같아 말을 꺼내지 못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태현은 그저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었고, 그녀가 데리고 간 곳을 바라보며 잠시 내려다보았다.

“커플 고리라고, 핸드폰에 하나씩 달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이것으로.”

“에? 아, 태현 씨도 하고 싶었구나.”

“뭐…….”

어깨를 으쓱이던 태현이 피식 웃었다. 그 미소에, 주변에서 힐끗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더 이상 도희는 질투를 하지 않았다. 그 미소가 오롯이 어디로 향하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쁘지는 않지.”

“그럼…… 이거로 해요. 아, 제가 살게요.”

“왜지?”

“제가 태현 씨에게 선물 하고 싶었거든요.”

무조건 지갑을 꺼내려는 태현의 손을 잡아 지갑을 다시 넣게 하고서 재빨리 계산을 하고 왔다. 정말이지, 못 살겠다.



<미리보기>

“아까처럼…… 그렇게 웃지 말아요.”

그러자 못 알아들은 척 하려던 태현은 다시 그렇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당장이라도 너를 가지고 싶어. 하고 싶은 말은 삼켰다.

“왜지?”

또다시 보이는 그의 미소에, 점점 다가오는 태현의 얼굴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못 하고 입을 달싹이다 그를 밀어내려고 손을 뻗었다. 위험신호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와 사랑을 나눈 후에, 태현은 그간 참았던 것을 모두 보여주겠다는 듯이 도희를 안아왔다. 오늘 새벽까지도 그의 품에 안겼었다. 오늘은 정말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밀어내려고 했지만, 이미 손을 느릿하니 들었더니 그대로 잡혔다. 그대로 고개를 숙인 태현이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촉, 소리가 조용한 차 안에서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괜히 외설스럽게 들려서 저도 모르게 흠칫 떨었지만 손을 비틀었다. 그러나 그는 놔주지 않고 이번에는 손가락 마디마다 입을 맞추며 다시 물었다.

“왜지?”

태현의 뜨거운 숨결로 인해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던 도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설레어서…….”

그러나 도희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 했다. 그걸 노렸는지 어느새 고개를 들고 말을 했기에 입을 벌리고 있던 도희의 입 안으로 금방 들어왔다. 매끄러운 혀를 집어넣고 그대로 굶주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폭풍처럼 몰려드는 급한 키스에 숨이 막힌 것도 같지만 달콤한 고통이어서 허공에 들고 있던 손을 겨우 뻗어 그의 목에 휘감았다.

혀끝을 깨물기도 하고, 입술을 깨물어보기도 하였다. 잠시 숨을 쉴 틈을 주었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금방 다시 입술을 찾았다. 몇 번이고 탐색을 했지만 새로 탐색하는 것처럼 구석구석을 혀로 쓸고 마주 닿아오는 그녀의 혀를 휘감았다. 점점 뜨거워진 열기에 배가 찌르르 울려오는 것만 같았다.

“하아…….”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이마와 콧등에 입을 맞추다 젖은 입술을 엄지로 닦아 주며 가볍게 다시 입을 맞추고서 안전벨트를 해주었다. 그의 연한 갈색 머리카락이 턱에 닿아 간지러워 짧게 소리를 내서 웃었다. 그러자 고개를 든 태현이 두 번 정도 다시 입을 맞추며 시동을 걸었다.

차는 출발했고, 그를 바라보던 도희는 잔잔하니 웃고 있었다. 말로는 자주 표현을 하지 않지만 한 번 표현을 하면 그것이 직격타가 되었다. 그리고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도 많았다.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사랑한다, 라는 말을 종종 해주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듣고 싶을 때마다 들려주는 것이 느껴졌다.

“태현 씨.”

문득 그렇게 저도 들려주고 싶었다. 그가 주는 애정을 돌려주고 싶어졌다.

“그래.”

늘 그냥 부르고 싶어서 불러도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이 좋아 피식 웃던 도희가 운전대를 잡은 그의 손 위에 손을 살며시 올려 보았다. 그러자 잠깐이지만 옆을 돌아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머뭇거리다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운전을 하던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대었다.

“그냥…….”

여전히 말을 하는 것은 부끄럽지만 그에게 들려주고 싶었기에,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사랑해요.”

빨간불이라 브레이크를 밟는 것은 맞지만, 그녀의 진심 어린 고백이 들려오자, 확 밟아 버렸다. 갑자기 멈춰버리자 놀란 도희가 느껴졌지만 그대로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 안고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신호가 켜지기 전까지 키스는 이어졌고,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에 그제야 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도희.”

“네……?”

“허리는 괜찮은가?”

갑작스럽게 멈춰선 데다 이어졌던 입맞춤에 잠시 사고를 멈춘 도희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아, 네. 괜찮은…….”

끝까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뭔가 이상하다 느꼈다. 그러나 곧 오피스텔 주차장에 도착했고, 차를 세우자마자 그녀를 급히 데리고 가는 태현이 있었다. 그 사이, 도희는 재빨리 말을 했다.

“저, 그런데 아픈 것도 같고…….”

그러나 태현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를 안으로 밀며 억눌린 음성으로 대답을 했다.

“늦었어.”

이내 7층을 급히 누르며 문이 닫히자마자 그녀를 벽으로 몰았다. 이내 도희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자마자 입술을 찾았다. 혀를 안으로 밀어 넣으며 제 몸을 그녀의 몸에 밀착시켰다. 농도 짙은 키스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문이 열리자마자 거칠게 비밀번호를 누르자마자 그녀의 입술을 다시 찾았다. 달콤한 열매처럼 느껴지는 그 입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입술을 뗀 것은, 그녀가 숨을 쉬기 곤란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아, 하아…… 태현 씨, 하아…… 정말, 오늘은…….”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당장이라도 안아야 할 것 같았지만, 그녀를 힘들게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태현은 현관문에 따라 주저앉은 도희를 일으켜 세워주며 대답을 했다.

“오늘은 그냥 자도록 하지.”

열기가 가득 찬 목소리로 하는 말에 도희는 미안해졌다. 그러나 저를 아껴주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마음 한 구석이 찡하니 울리는 것만 같았다.

도희는 씻고 난 후, 옷을 갈아입고 태현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피해줘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이 침대 헤드에 기대어 있던 태현이 다가오라며 손짓을 해왔다. 조금은 마음을 놓으며 다가갔다. 이제는 그가 옆에 있지 않으면 허전해서 잠이 오지 않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태현 씨.”

“그래.”

“……고마워요.”

무엇이 고마운지 묻지는 않았다. 그저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묻었다.

자신이 아파도 상관은 없으니 그녀만 아프지 않으면 다 괜찮았다. 아프지 않게, 울지 않게. 그리고 그저 행복하게 웃을 수 있게. 밝게 웃는 모습을 지켜주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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