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유희찬은 예술대학 사진과를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하나 구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때, 때마침 대학 선배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야, 너 강 작가님 어시스트 해볼래?”

강 작가라면 최연소 사진대회에 입상한 작가인 강규헌 사진작가? 희찬은 드디어 자신에게도 길이 열리는구나 하는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그게 바로 지옥으로 통하는 문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으니…….


스물여덟 ‘스쿠알로’ 잡지사 대표, 박정우

스물여덟이란 나이에도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찌질한 대표이사. 그가 하는 거라고는 잘난 얼굴과 넘쳐나는 돈으로 이 여자, 저 여자와 노는 게 전부이다. 한창 한량처럼 살던 그에게 어떤 스토커 같은 여자가 나타난다. 한강에 앉아있던 그를 몰래 카메라에 담는 이상한 여자. 정우는 경찰의 신고한다는 말과 함께 그녀의 카메라에서 자신의 사진을 모두 삭제해 버린다. 다시는 이러지 말라 충고를 한 뒤, 뒤돌아 섰는데 또 들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 멍한 얼굴로 뒤돌아 서자 그녀는 후다닥 도망치고야 만다.
어이가 없고 매우 황당한 사건. 그는 허허 웃으며 넘겨보려 하지만 다음 날, 사진작가와 미팅자리에서 작가 어시스트로 그 스토커와 대면을 하게 되는데.

최연소 사진작가로 데뷔를 한 남자, 강규헌

지금은 서른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사진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규헌은 고등학교 때부터 모든 사진대회란 대회의 상은 모두 휩쓴 천재이다. 그는 최연소 대한민국 최고의 사진작가가 되었고, 그에게 걸 맞는 잘난 여자친구도 함께 있었다. 하지만 매우 고지식한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자격지심을 느끼고 헤어지게 된다. 그렇게 사진만 보고 살아온 그에게 갑자기 골칫덩이 어시스트가 딸려오게 되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하나하나 모든 게 서툴러 실수투성이인 그녀 때문에 그의 스트레스는 극도에 치닫게 되는데.

대한민국 최고 회사의 외동딸이자 규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진작가, 윤나영

그녀는 사랑 때문에 사진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랑만큼 사진이 좋아졌다. 그래서 규헌과 함께 유학을 가자 했지만 그는 같이 가지 않겠다 했다. 혼자가게 된 유학길은 외로움이 늘 따라다녔다. 그에게 점점 연락은 뜸해지고 급기야 나중에는 전화조차 오지 않았다. 외롭다. 사랑 때문에 시작한 사진도 이제 힘들어진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던 그녀는 질투유발 작전을 써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헤어지자, 라고 쓰여있는 편지 한 장 뿐. 그녀는 결국, 사랑을 잃었다. 규헌의 대한 반발심으로 큰 성과를 얻고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다. 스물아홉,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맨 먼저 규헌의 집 앞을 서성이는데, 그의 집에서 웬 어린 여자가 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

<본문 중에서>

“당신이야말로 왜 자꾸 날 괴롭히지 못해 안달인데요?”
“뭐?”
“처음 한강에서는 제가 잘못했다 쳐요. 아니,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 쭉 절 괴롭혔잖아요. 그것도 제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요. 시간이 그렇게 남아돌아요? 인생이 편하니까 남의 인생 괴롭히고 싶어졌어요? 대체 왜 그러는 건데요!”

억눌렀던 화가 터져 버린 듯 그녀가 쉴 새 없이 말을 이어 갔다. 정우는 그런 그녀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다는 듯 희찬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그의 옆을 지나쳐 갔다. 저벅저벅 멀어지는 그녀의 발소리가 들린다. 정우는 허한 웃음을 내뱉으며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저 여자가 진짜…….”

정우도 단단히 화가 난 듯 고개를 돌려 저벅저벅 여자 화장실을 나섰다. 그리고는 스튜디오 문을 열려던 희찬을 잡아챘다.

“야. 유희찬.”
“이거 놔요!”
“유희찬!”

그가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자 발버둥 치던 그녀가 조용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화가 치밀어 올라오는 듯 그녀의 입에서는 뜨거운 입김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대체 나한테 왜 그래요? 당신이 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뭔데 이래?”

그녀가 따지듯 물었다. 정우는 문득 그녀의 말에 당황한 얼굴을 지었다. 당신에게 원하는 것?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왜 이 사람을 이렇게나 집착할까? 대체 왜?

정우의 화가 나 있던 얼굴이 조금씩 멍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희찬의 팔을 꽉 잡고 있던 그의 손의 힘도 느슨해졌다. 정우의 눈에 찰 정도로 예쁘지도 않다. 키가 크고 늘씬하지도 않다. 패션 감각도 영 꽝이다. 돈이 많지도 않다. 자신을 사랑한다 말하지도 않는다. 그런 그녀를 왜 쫓아다니는 것일까?

정우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바라보자 희찬도 조금 당황한 듯싶었다. 혼이 나간 것처럼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정우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희찬은 슬쩍 정우가 잡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워, 원하는 거 없으면 다시는 아는 척하지 마요.”

희찬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다시 스튜디오를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반쯤 열린 틈으로 셔터 소리가 들리던 그때, 정우가 갑자기 희찬의 어깨를 잡아 자신을 마주 보게 그녀의 몸을 돌려세웠다. 그리고는 쿵, 문 쪽으로 그녀를 몰아붙였다. 열렸던 스튜디오 문이 닫혔다. 셔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놀란 희찬이 정우를 바라보면 멍한 모습이 아닌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정우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거?”

정우가 싱긋 웃는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온다. 알싸한 그의 향수가 코끝을 스치자 희찬의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최대한 문 쪽으로 붙어 서지만 너무나 가깝다. 그의 얼굴이.

숨이 막힐 정도로 가까운 거리. 편하게 숨 쉬기조차 못하는 거리지만 정우의 숨소리는 아주 편안하게 그녀의 뺨에 맞닿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희찬의 숨통이 조였다. 빤히 바라보는 정우의 눈빛에 희찬은 차마 손가락 끝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너.”

그가 입을 열었다. 희찬이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린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원하는 거 너야, 유희찬.”

정우가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이며 말했다. 그의 입꼬리가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그리고는 꽤나 매력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 뭐라구요?”

그녀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정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조금 더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섰다. 조금만 그가 움직여도 그녀의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한 거리이다.

“유희찬, 널 원한다고.”

정우가 씩 웃으며 아주 살짝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조금 뒤로 물러섰다.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에 희찬은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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