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배, 진짜 고마워요. 진짜! 진짜로 고맙습니다!”'연신 허공에 대고 꾸벅 90도 인사를 하는 희찬의 얼굴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해맑은 웃음이 자리 잡혔다. 열심히 하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말은 대체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만약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만 안다면 그분에게 찾아가서……, 아니 이미 돌아가셨으려나? 아무튼, 그 사람 무덤에라도 가서 백만 번 절이라도 올리고 와야겠다는 심정이었다. 정말이지, 열심히, 딱 ‘열심히’란 단어에 걸맞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대학교 졸업 후, 취업 불황에 부딪혀 여기저기 알바로만 전전긍긍하던 1년이란 시간 동안 정말 백수라는 건 허망한 삶이로구나, 라는 걸 몸소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오늘 드디어 평소에 친하게 지내오던 대학 선배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정말 구세주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는 사람이 강규헌 작가 어시스트로 일하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유학 간다 말을 자주 했었거든. 아무래도 다음 주에 갈 건가 보더라고. 그래서 어시스트 자리가 빈다면서 혹시 주변에 할 만한 사람 없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전화한 거야. 생각해 보니 너도 취업 자리 알아보고 있었잖아. 괜찮다면 그 일이라도 한 번 해볼래?'네. 당연하죠. 당연한 말씀을 뭐 새삼스레 물어보고 그런답니까? 선배님도 참. 희찬은 선배의 전화가 끊길 동안 수십 번은 허공에 대고 인사를 한 것 같다. 희찬의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한 듯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너무 기쁜 나머지 그들의 시선이 느껴질 새가 없었다.'선배가 전화가 끊기고 나서야 희찬은 연신 해대던 인사를 멈추고 뿌듯한 얼굴로 두 손에 쥔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이 선배가 나한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대학 다닐 때에는 사사건건 시비에 도움이 되는 건 하나도 없더니. 역시 사람은 오래 봐야 한다는 말은 틀리지 않는 것 같다.'“유희찬! 손님 몰리는 데 어디서 뭘 하는 거야?”'앙칼진 사장의 목소리에 희찬은 놀라 휴대폰을 앞치마 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눈이 쭉 찢어진 사장이 쓰윽 유리창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검지를 까닥였다. 얼른 들어와 일하라는 소리였다. 평소 같았으면 구시렁거리며 저 마녀 같은 인간, 이라고 속 시원하게 욕을 해줬을 테지만 오늘만은 왠지 그런 사장의 목소리도 귀엽게만 느껴졌다.'“네, 지금 갑니다!”'목청 좋은 희찬이 우렁차게 소리치며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주문을 받는 내내도, 커피를 받는 내내도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취업 생각뿐이었다. '강규헌이라……, 강규헌이라고 하면 고등학교 때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는 말로 십여 년 전부터 유명했던 사람이다. 지금은 패션 사진작가로 일하고 있는 걸로 알지만 예전엔 사진대회란 대회는 모두 상을 휩쓸고 신문, 잡지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유명한 사진작가였다. 예전에 딱 한 번 사진전을 연 적이 있어 알바비 모은 돈을 탈탈 털어 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 사람의 사진을 많이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인상적인 사진은 있었다. 특히 ‘안단테’라는 제목으로 찍었던 사진. 빛 때문에 여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몽환적이고 뭔가 아름답고 가슴 따뜻하게 느껴졌던 사진이었다. 그 사람의 사진 중에는 딱히 몽환적이거나 아름다운 사진은 없었다. 독특하고 괴이하달까. 이게 정말 사진이 맞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독특한 발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물론 그러니까 천재란 소리를 들었겠지만. 하지만 ‘안단테’라는 제목을 가진 그 사진만은 달랐다. 그 사람의 독특하고 괴이함과 멀었다. 그래서 좋았다. 그 괴이한 사진들 틈에서 아름답게 빛나던 작품이라서.'“유희찬!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