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사람과 결혼하지 않은 겁니까? 그때 분명 나한테 다시 시작할 거라고 했잖습니까.”
지수는 대답 없이 입술만 지그시 깨물었다.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지수에게서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거라는 기대를 한 건 아니다.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그날에도 그냥 미안하다고만 했을 뿐 구구절절 변명 따위 하지 않던 사람이니……. 그럼에도 그는 묻고 싶었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다시 만났던 그들이 왜 또 헤어진 것인지.
“인연이 아니었나 보지.”
“단순히 인연이 아니라서?”
“이미 지난 일이야. 들춰내고 싶지 않아.”
“윤 변호사가 그러더군요. 자신은 물론이고 나도 선배에게 빚이 있다고. 그 빚이란 게 뭔지, 내가 알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 거 없어.”
지수의 단호한 대답이 오히려 그에게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그와 관련된, 하지만 정작 그는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지수와 건우가 비밀로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날 사랑하긴 했던 겁니까?”
“…….”
“대답해요.”
쏘아보는 유헌의 눈빛이 견디기 힘든지 지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만 가자.”
“앉아요.”
유헌은 일어서려는 지수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잡아 다시 주저앉혔다. 강압적인 유헌의 태도에 지수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차유헌, 왜 이러는 거야?”
“헤어지고 나서 내가 제일 고통스러웠던 게 뭔지 압니까? 내가 당신에겐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로 간단하게 정리해 버릴 수 있는 그런 보잘것없는 존재였단 사실입니다. 차유헌이란 인간이 문지수에게는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게 미치도록 화가 났단 말입니다.”
지수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어 보이는 유헌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널 그렇게 생각했다면, 지금 너와 함께 있지도 않았을 거야. 그냥 잠깐 스친 인연 정도로 치부했었다면……널 보는 게 이렇게 고통스럽진 않겠지.”
“…….”
“차라리 널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서늘한 밤바람이 불어와 아프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지나갔다. 숨겨두었던 진실을 말해준 지수로 인해 말라비틀어진 고목처럼 죽어 있던 유헌의 심장에 비로소 피가 돌기 시작했다.
유헌은 강압적으로 잡고 있던 지수의 손목을 놓아주고 대신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리고 지수를 재회한 그 순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리 돌아가요. 다시 예전으로…….”
안화령
안화령
쓰고 싶은 글과 쓸 수 있는 글과 써야할 글이 하나가 되는 그날을 위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느림보 글쟁이. 작가연합홈페이지 글쟁이마을에서 칩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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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는 것 보다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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