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자동차의 와이퍼가 굵은 빗방울을 좌우로 힘차게 갈라냈다. 잠깐 말갛게 개었던 차창이 다시금 흐려지자 지수는 와이퍼의 속도를 조금 더 높였다. '“어지간히도 쏟아지네.”'나사가 풀려 헐거워진 수도꼭지처럼 내내 손안에서 겉도는 핸들을 타닥타닥 두드리며 그녀는 시계를 흘낏 쳐다보았다.'-AM 11시 48분.'아직 예식시간까지는 42분이 남았다. 익숙지 않은 길을, 익숙지 않은 운전 실력으로 찾아가는 일은 여간 번잡스럽고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20년 지기인 녀석의 결혼식만 아니라면 오던 길을 되짚어가고 싶을 정도로 빗줄기가 거셌다.'지수는 열 맞춰 가는 개미떼처럼 줄줄이 엮인 차량 행렬을 따르며 생경한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몇 년 만에 돌아온 서울의 거리는 이상할 정도로 낯설다. 찬찬히 살펴보면 그리 많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눈길이 머무는 모든 곳이 생전 처음 보는 것인 양 낯설기만 했다. '예식장이 가까워질수록 차량의 흐름이 점차 더디어졌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형광색 봉을 든 주차안내원이 비를 맞고 선 채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차량을 인도하고 있었다. 빽빽이 주차되어 있는 차들 틈에 빈 곳을 발견한 지수는 조심스레 차를 밀어 넣었다.'신랑신부를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예식장 안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한껏 차려입은 옷차림을 자랑이라도 하듯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신부 친구들과 그런 그녀들을 흘끔거리는 신랑 친구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과 더불어 의미심장한 설렘이 느껴졌다. '나비가 꽃을 찾아 날아다니듯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는 시선들 속에서 지수는 길을 잃은 것처럼 잠시 주춤했다. 낯익은 인물들이 간혹 보이긴 했지만 먼저 다가가 인사를 나눌 만큼 반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때문에 그녀는 오가는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을 만한 한적한 장소를 골라 뒤로 물러섰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부대끼며 같은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던 친구들이었는데 지금은 그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탓에 물과 기름처럼 괴리감이 느껴진다.'“혹시……문지수?”'망설이는 듯한 목소리에 지수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를 아는 체한 남자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문지수 맞지? 나 기억 안 나? 우리 같이 스터디도 했었잖아.”'남자의 설명 덕에 지수는 그리 어렵지 않게 그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그녀와 같은 대학에 다니던 동문친구였다.'“송경민, 오랜만이네.”'“기억하고 있구나. 외국 있다는 소리 들었는데, 언제 귀국한 거야?”'“며칠 됐어.”'“광석이 결혼하니까 네 얼굴도 보게 되네. 광석이도 너 온 거 알아?”'“어제 통화했어.”'“들어오면서 보니까 선배들도 많이 왔던데 인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