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각또각…….
하늬는 총무과로 향하는 복도를 막 돌아섰다.
“나 좀 보지.”
갑자기 나타난 제후의 모습에 하늬는 소스라치고 말았다. 제후는 당황하는 하늬는 손목을 잡아끌고 비상구 쪽으로 향했다. 하늬는 끌려가면서도 누가 보지나 않을까 불안한 듯 두리번거렸다.
쾅!
비상계단의 철문을 거칠게 닫혔다. 제후는 하늬를 돌아보지 않은 채 철문만 뚫어지게 봤다. 하늬는 저릿한 손목을 쓸어내리며 제후의 등을 노려봤다. 제후의 거친 숨결이 천장 높은 계단에 울려 퍼지고 그의 굳은 넓은 어깨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하늬는 제후와 대면하는 게 싫었다. 대남에 입사하기로 했을 때의 용기는 다 어디로 갔는지 그의 눈을 마주 보면 힘들어질 것 같아서 피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냥 일만 하고 싶었다. 골치 아픈 일들은 모두 뒤로 밀어 두고 재미있게 일에 파묻히고 싶었다. 그녀는 뒤돌아서서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통통 내려갔다.
“기다려!”
제후는 순식간에 하늬를 따라잡았다. 그의 팔이 하늬의 허리를 꼭 감쌌다. 뜨거운 팔의 감촉은 하늬의 블라우스 아래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제후의 팔은 절대로 하늬를 놔주지 않을 것처럼 강하게 그녀를 옭아맸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머릿결에 스쳤다.
“빨리 오고 싶어서 며칠 동안 잠도 설쳐가면서 일했어. 공항에 내리자마자 당장 이곳으로 왔다구. 아무에게나 웃어 주면서 내게는 왜 그리 인색하지?”
“당신은 남제후 씨니까요. 아무나가 아니니까요.”
“웃기는 소리군. 솔직히 난 당신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게 너무 힘들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난 감정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아?”
하늬는 예상치 않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도 그랬다. 그를 잊고 열심히 일하다가도 그가 생각나면 가슴이 뭉클했다.
“당신은 아직 터질 심장이나 있죠. 난 이미 터져서 없어요. 그래요. 이제 당신 용서할게요. 그러니 나 좀 내버려 둬요. 다시 시작하자고 말아요. 난 아픈 거 싫어요. 이대로가 좋아요. 열심히 일만 하고 싶어요. 당신이 도와주면 안 돼요?”
하늬는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손끝으로 얼른 눈물을 찍어낸 하늬는 제후의 팔을 풀며 돌아섰다. 하늬는 자신보다 한참 위에 있는 제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진심으로 당신 용서할 테니 잊기로 해요. 그래야지 나도 당신도 편하게 일할 수 있어요. 당신을 미워하지 않을게요. 잠시 동안 꿈속에 있는 것처럼 행복하기도 했으니까. 당신도 좋은 사람 만나서 다시 시작하세요.”
제후의 눈이 딱딱하게 변해서 하늬를 노려봤다.
“싫어. 당신은 내 거야. 내가 원하는 동안은 아무에게도 못 줘.”
“그렇지 않아요, 상무님!”
“그렇게 부르지 마. 적어도 우리 둘이 있을 때는 말이야.”
“앞으로 둘만 있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하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