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가네 족발집의 안채는 아침부터 북적대며 소란스러웠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처럼 이 집 새 자매는 아침부터 화장실 앞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큰딸, 팽혜수가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막내딸 팽주리가 문가에서 기다리던 둘째 딸 팽하늬를 제치고 날쌔게 세치기를 했다. 주리는 혀를 쏙 내민 후 문을 쾅 닫았다. 팽하늬는 아랫배를 붙잡고 주먹을 흔들었다.' “야, 팽주리! 너 치사하게 이럴 거야! 이게 진짜……으윽!”' 다리를 꼰 채 소리치던 하늬는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하늬는 아랫배에 힘을 주고 살림집으로 쓰는 안채를 급히 빠져나가 족발 가게로 후닥닥 뛰어 들어갔다. 앗차차! 하늬는 가게에 딸린 화장실이 고장 났다는 게 그제야 생각났다. 하늬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가게를 쌩 빠져나갔다. 김치를 버무리던 하늬 모친은 바람을 휙 몰아치며 밖으로 뛰어나가는 하늬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 “쯧쯧……계집애가 으찌 저리 조신하지 못 한 겨. 저 꼴을 해가지고 어딜 저리 튀어나가. 머리는 또 왜 저려.”' “왜 어때서 그려. 이뿌기만 하구먼! 당신 은근히 애 자꾸 기죽일 겨? 하늬가 집에서 논다고 애 너무 기죽이지 말어.”' 콧노래를 부르며 족발을 헹구던 하늬의 부친은 잔소리를 하는 아내를 점잖게 타일렀다. 하늬 모친은 남편이 뭐라고 하던 백수인 딸이 못마땅해서 입을 실룩였다. 그리고는 부부는 다시 점심 장사 준비를 위해 부산하게 손을 놀렸다.' 한편, 족발 가게를 빠져나와 이웃하는 상가 건물로 뛰어 들어간 하늬는 여자 화장실이 있는 이층까지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그녀는 가난한 고시 준비생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물 빠진 파란 운동복을 입고 부풀어 오른 파마머리를 아침 댓바람에 날리며 무조건 달렸다.' ‘으으윽……십 미터……오 미터, 일 미터!’' 우당탕!' 여자 화장실의 문이 급히 닫혔다.' 취이익.' 시원하게 내려가는 변기 물소리와 함께 하늬의 만족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휴, 죽을 뻔했네.”' 화장실에서 나온 하늬는 어슬렁거리며 세면대 앞으로 다가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간밤에 번역 일을 좀 하느라 잠을 설친 탓에 시커먼 다크서클이 눈 아래 생겼다. 하늬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혀를 찼다.' “이를 어째 쯧쯧쯧……. 옥에 티네 그려.”' 하늬는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 보며 손끝으로 칙칙한 눈가를 매만졌다. 그리고는 남산만큼 부풀어서 잔뜩 엉켜 있는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꾹 눌러 보았다. 그러나 손을 떼기 무섭게 머리카락은 다시 부풀어 올랐다. 머리는 미용학원에 다니는 막내 동생의 작품이었다.' “돌파리 미용사 꼬임에 빠져 완전 마루타가 되었네 그려.”' 하늬는 툴툴거리며 손에 물을 묻혀 머리카락에 발라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매직하려면 돈 좀 들 텐데……알바한 돈도 다 떨어졌는데. 큰일 났네.”' 하늬는 통장잔고를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려졌다. 취업 준비를 하며 백수 노릇을 한 지 어언 일 년, 집에서는 눈치를 주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슬슬 식충이 취급을 받고 있었다. 용돈 동결은 당연하고 이제는 직종불문하고 아무 데나 취업해서 제발 집을 떠나 줬으면 하는 분위기였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탓인지 하늬는 졸업하고 취업을 하지 못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한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한국 종합금융회사의 선두주자인 대남 종합금융지주회사에 입사할 절호의 기회가 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자동차 뺑소니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면접을 보지 못하는 불운이 겪었다. 하늬는 일 년 간 칼을 갈며 대남에 다시 들어갈 날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대남 신입 사원 채용 공고가 났고 하늬는 서류전형에 응모했다. 과거, 대남에 응모했던 경력이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 몰라서 조금 불안했지만 대남 입사에 그녀의 앞날과 명운이 달려 있었다. 백수 생활 청산하고 구박 받는 식충이 신세를 면할 것인가 아닌가. 하늬는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거울을 보며 자신을 향해 걸쭉한 사내의 목소리로 성대모사를 시작했다.' “이봐, 친구. 힘내라구. 그렇게 풀죽어서야 어디 면접시험이나 보겠나. 기운 내! 알았나?”' 하늬는 등도 뻣뻣하고 몹시 피곤했지만 활짝 웃었다. 거울을 보며 파이팅을 외친 하늬는 문 쪽으로 향하다가 눈이 동그래졌다. 일층 복도에서부터 크게 들리는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상소리, 아직 아침 일곱 시를 겨우 넘긴 이른 시간이었다. 하늬는 복도로 나가는 것을 잠시 늦추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험한 세상에 괜히 남의 송사에 끼어들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기는 꼴이 되기는 싫었다. 그러나 그놈의 호기심이 하늬를 화장실 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게 만들었다. 하늬는 불안한 눈초리로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계단으로 젊은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비지땀을 흘리며 가끔 등 뒤를 힐끔거리던 사내와 하늬의 눈이 딱 마주쳤다. 기분이 섬뜩해진 하늬는 얼른 화장실로 쏙 들어왔다. 하늬는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마치 범죄 현장이라도 목격한 듯 피가 빠르게 돌았다. 등 뒤에서 낯선 타인의 숨소리가 들리는 순간 하늬는 소름이 확 돋았다. ' “왜, 왜 이러세요!”' 하늬와 눈이 마주쳤던 사내는 어느새 화장실로 들이닥쳐 하늬를 와락 잡아끌었다.' “이리 와. 빨리!”' 하늬는 있는 힘껏 뿌리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늬는 남자의 손에 잡히어 화장실 칸막이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땀이 흥건한 남자의 손이 하늬의 입을 막고 목을 팔로 감았다. ' “조용히만 있으면 돼. 아무 짓도 안 해.”' 남자의 거친 목소리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자의 긴박함과 무지막지함이 남자에게서 느껴졌다.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하늬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팔이 꺾긴 하늬는 반항 한번 제대로 못하고 변기 위에 걸터앉았다. 곧이어 화장실 앞의 복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은 오래전에 달아났고 하늬의 머릿속은 실타래처럼 마구 뒤엉키고 벌렁거리는 심장은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했다. 복도에서 발소리들의 주인이 말을 주고받았다. ' “허광태, 쥐새끼 같은 놈……. 실장님, 어떡할까요?”' “김 대리는 일층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고 박 주임은 위로 올라가 봐. 그놈을 밑으로 몰자구.”' “예!”' “그리고…….”'지시하던 저음의 목소리는 갑자기 뚝 멈췄다. 무엇인가를 눈치 챈 것일까, 사방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추적자들이 뭔가 낌새를 챘다는 것을 등 뒤의 사내도 알아챈 듯했다. 목에 감긴 팔이 더욱더 뻣뻣하게 경직됐다. 하늬는 숨이 막혀왔다. 이십사 년을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맛보고 있었다. 대남에 입사하겠다는 청운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저녁 뉴스, 사건사고 코너에 실리는 운명을 맞이한다고 생각하니 하늬는 절통하고 애통했다. 등짝으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등 뒤의 사내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사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자 하늬는 머릿속이 조금씩 환해지기 시작했다. 화장실 밖의 사내들이 눈치만 챈다면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녀의 생각을 앞서가듯 사내는 그녀의 입을 더 세게 틀어막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찍 소리만 내봐. 당장 목을 비틀 테니. 나 혼자 죽지 않는다.” ' 사내는 이를 갈며 말했다. 하늬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두 발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며 문 앞으로 다가왔다. 사내의 호흡이 등 뒤에서 더 거칠어졌다.' 똑똑똑…….' 금방 대답이 들리지 않자 문밖의 인물은 제차 노크를 했다. 하늬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사내의 눈치를 살폈다. 그자는 대답하라는 듯 손을 풀며 눈짓을 했다. ' 똑똑똑…….' 살얼음판 같은 침묵이 흐르고 화장실 안을 진공상태처럼 되었다. 목을 감고 있는 팔은 여전히 단단하고 문 밖의 추적자들은 하늬의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안에 계십니까?”' 정중하지만 차갑게 날이 선 목소리였다. 하늬는 목소리를 추스르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흠흠! 왜, 왜 그러시는데요? 여기 여자 화장실인 거 몰라요? 휴, 휴지 필요해요?”' “아닙니다. 별일 없으십니까?”' “누구 노, 놀립니까? 변비인 사람한테 별일 없냐니, 저 변 볼일 있거든요!”' “큭큭큭…….”' 리더를 제외한 사내들의 웃음소리가 터졌지만 그 웃음도 곧 뚝 끊어졌다. 리더의 눈총이라도 받은 모양이었다. 하늬는 그 웃음소리마저 원망스러웠다. 그녀는 당장 소리를 질러 등 뒤의 나쁜 놈을 넘기고 싶은 마음과 추적자들을 따돌리고 난 뒤 자신도 안전하게 풀려나고 싶은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화장실 안의 침묵을 다시 깼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풀을 먹인 천처럼 반듯하지만 위화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하늬는 침을 꿀꺽 삼키며 간신히 괜찮다고 대답했다. ' “이만 가지. 아무래도 놓친 모양이야.”' “예, 실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