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틴 코너의 손가락은 감각을 잃어 구부러지지가 않았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권총이 그의 손에서 툭 떨어져 나갔다. 갑작스러운 총성에 혼비백산한 원주민들은 사방으로 달아났고, 파도의 원시적인 울부짖음과 몇 미터 앞에 쓰러져 있는 어두운 형체만이 저스틴과 함께 남아 있었다.
순간, 자신도 알 수 없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모래 벌판에 버려진 인형처럼 사지를 늘어뜨린 채 움직임 없이 누워있는 형체를 향해 다가가면서, 그의 가슴속에는 두려움이 차 올랐다.
달빛이 데이비드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사람 복잡한 런던의 한 거리에서라면 아무도 두 번 돌아다보지 않을 평범한 얼굴이지만, 사람 좋아 뵈는 편안하고 반듯한 얼굴이었다. 굵은 핏방울이 한쪽 입가에서 뚝뚝 떨어졌다.
데이비드의 두 눈이 파르르 떨리다가 열렸다.
「이보게, 친구, 조금만 왼쪽으로 비켜주겠나? 바람을 가리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네만.」
그 목소리가 너무나 평범하고 편안하게 들려 저스틴은 오히려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무릎을 푹 꺾으며 주저앉아 데이비드의 상체를 두 팔로 안아 올렸다.
「제기랄…… 스카보로씨, 지금 죽어버리면 안 된단 말이에요!」
데이비드의 입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저스틴의 셔츠를 흥건히 적셨다. 이 야만적인 땅에 길들여지는 동안, 저스틴이 보아온 상처 중에는 목숨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위중한 것도 많았다. 한 손으로 출혈을 막아보려고 애쓰고는 있었지만, 자기 팔에 안긴 이 남자, 친구이자 형이며 아버지 같았던 데이비드 스카보로라는 사람이,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가고 있음을 그는 부인할 수 없었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빠져나간 것처럼 새하얀 그의 이마 위로 몇 올의 곱슬머리가 늘어져 있었다. 저스틴은 피묻은 손을 들어, 그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겨주었다.
데이비드가 손을 내밀었는데, 손가락엔 황금 사슬로 된 시계줄이 감겨 있었다.
「클레어…….」
데이비드의 목소리에서 마치 금이 간 파이프 오르간처럼 쉬잇쉬잇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데이비드가 시계줄을 저스틴의 피묻은 손에 꼭 쥐어줄 때에야 그는 깨달았다. 데이비드가 왜 배를 띄우지 않고 텐트로 돌아갔었는지를. 저스틴은 그가 무기를 가지러 갔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데이비드가 가지러 갔던 것은 소중한 딸의 사진이 들어 있는 시계였던 것이다. 데이비드의 목소리가 점점 가늘어져 갔다.
「내 딸을…… 찾아. 미안하다…… 전해줘. 사랑……했다는 것도……. 저스틴……, 내 작은…… 천사를…… 돌봐주게……. 맹세……해줘.」
저스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주먹만한 어떤 것이 목구멍을 거슬러 올라오는 것 같았다. 손안에 든 시계를 내려다보면서도 ,차마 열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 해맑은 미소, 상냥한 갈색 눈동자를 마주하고, 그 딸아이의 아버지가 이 낯선 바닷가에서 자기 팔에 안긴 채 죽어갔다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자신만 아니었더라면, 데이비드는 이렇게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데이비드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저스틴의 팔을 부여잡았다. 꽉 다문 이 사이로 한마디씩 한마디씩 힘겹게 말이 흘러나왔다.
「하느님…… 두고…… 맹세하게, 저스틴!」
저스틴은 고개를 떨군 채 데이비드의 눈길을 피했다. 그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방울이 데이비드의 얼굴까지 적셨다.
「맹세합니다.」
꺼져가는 듯한 목소리로 저스틴이 말했다. 갑자기 맥을 놓아버린 데이비드의, 상반신이 저스틴의 무릎 위로 떨어졌다. 희미한 미소가 마치 그림자처럼 그의 입가를 스쳐갔다.
「그래야…… 내 아들이지. 내가…… 가는 곳…… 금광도…… 필요 없……. 길마다…… 황금…… 포장되어…… 있으니까…….」
저스틴은 눈물을 흘리면서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영원한 낙천주의자예요, 당신은…….」
그러나 대꾸는 없었다. 이제는 생명이 떠나버린 소중한 친구의 몸뚱이를 가슴에 끌어안고 몸을 앞뒤로 흔들어대면서, 저스틴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모랫벌을 쓸어 내려가는 파도처럼 죄책감과 쓸쓸함이 그의 전신을 휩쓸고 내려갔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일어서니, 뻣뻣하게 굳은 듯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저스틴은 마치 아기를 안아 올리듯,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데이비드를 안아 올렸다. 죽은 이의 사지와 머리는 힘없이 축 처져서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거렸고, 다갈색 머리칼은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저스틴은 데이비드의 시신을 작은 조각배의 바닥에 내려놓고, 정성을 다해 사지를 편안하고 단정하게 펴놓았다. 기다란 장대로 밀어서 배를 물위에 띄운 후, 저스틴도 조용히 데이비드 옆에 드러누웠다. 마음속은 분노로 들끓고 있건만, 온몸은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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