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모레턴의 작은 마을은 이른 아침에 긴 회색의 긴 그림자가 많은 돌벽 집들을 휘어감고 있었다. 제법 운치있는 집들 사이로 잘 닦여진 길이 중앙에 위치한 첨탑의 교회에서부터 높은 흰색 건물의 영주의 성에 이르기까지 곧게 뻗어 있었다. 지금 막 여명의 빛속으로 몇 마리의 개들이 기지개를 켜며 어슬렁거렸고, 졸리운 눈을 비비며 여인들이 마을 우물가로 느릿느릿 걸어나오는 모습과 어깨에 도끼를 짊어진 사내들이, 성문지기들이 참나무로 된 성문을 열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작고 수수한 이층의 하얀색 집에서는 알렉산드리아 블랙켓이 아침을 시작하는 부산스러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침실 바로 곁에 계단이 있어 그녀는 때를 기다린 듯 부드러운 가죽 신발을 주워들고 계단을 향하여 발끝으로 조심스레 걸었다.
그녀는 자신의 볼품없는 몸매를 감싸고 있는 조아한 모직 드레스를 벗고서 다른 옷을 입은 채로 해가 떠오르기를 수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딱 한번 그녀는 그녀의 몸매를 혐오스런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그녀는 평생을 날씬하고 볼륨있는 몸매를 지닌 여성으로 성장하길 기대하며 살았지만, 스무 살이 되자 그녀는 자신이 납작한 가슴과 볼품없는 엉덩이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숨을 쉬며 그녀는 적어도 콜셋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 아버지의 침실에 들어선 그녀는 아버지가 자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모직 스커트를 걷어올리고 계단이 심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자 네 계단을 훌쩍 뛰어넘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에 내려와서도 그녀는 섣불리 문을 열지 못해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정이 필요로 한 아버지가 깰까봐 더욱 조심스럽게 아버지가 손수 반쯤 작성한 유언장 주위로 종이와 잉크가 널려 있는 너저분한 책상을 지나 벽에 걸린 두 개의 악기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며 그곳으로 걸어갔다.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주지 않은 조물주에 대한 원망도 그녀가 자신의 음악을 생각할 때에는 말끔하게 사라졌다. 이미 부드럽고 감미로운 새로운 곡조가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사랑의 연가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니?」
계단 끝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얼른 그에게로 달려가서 허리를 잡고 아버지가 의자에 앉는 것을 도왔다. 어두운 방에서조차 아버지의 눈밑에 푸르스름한 반점이 감도는 것을 보자 알렉산드리아는 가슴이 아팠다.
「아직 더 누워 계셔야만 해요. 하루 일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잖아요.」
아버지는 잠시 동안 그녀의 손을 잡고서는 그녀의 예쁜 눈을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그는, 딸이 약간 올라간 보랏빛 눈과 거의 굴곡없는 입술, 자그마한 코에 꼬마 요정 같은 용모에 불평하는 소리를 이미 수없이 들어 대단히 불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서 가렴.」
그녀를 부드럽게 밀치며 그가 말했다.
「가서 어떤 악기를 가져가야 할지 보고, 사람들이 찾아와서 최근의 사랑에 대한 노래를 들려달라고 보채기 전에 떠나거라.」
「하지만 오늘 아침만은 아빠와 함께 있을래요.」
아버지가 걱정스럽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그는 작년부터 세 번씩이나 심장의 극심한 통증으로 시달려왔었다.
「알렉산드리아! 내 말에 따라라. 지금 당장 물건들을 챙겨 떠나거라!」
「네, 아버지.」
큐피드의 활과 거의 똑같은 입술로 그에게 애정이 가득 담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벽쪽으로 눈을 돌렸다.
재빨리 벽에서 강철로 된 현이 있는 시턴(기타 비슷한 현악기 영국에서 유행 함)을 들고 그 지리에 솔터리(현악기의 일종)를 걸었다. 돌아서며 알렉산드리아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시겠어요? 굳이 오늘 아침 떠날 필요는 없는데…….」
하지만 아버지는 그녀의 물음에 아랑곳없이 종이와 잉크와 펜, 그리고 접는 악보대가 들아 있는 가방을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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