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미국에서부터 끼고 왔던 약혼반지를 냉정하게 잡아 뺐다. 잡아 뺀 반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녀는 결심이 선 듯 그것을 힘껏 던져 버렸다. 가방을 향해 반지가 날아갔다. 그녀의 결심처럼 반지가 그 안에 처박혔다. 지난 2년간 그녀의 마음을 옥죄고 감정을 구속시켰던 반지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속이 뻥 뚫렸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던데? 이 기쁨을 누구하고 나누지?’
휴대폰을 든 그녀는 해외 어느 지역 번호를 중얼거리며 버튼을 눌렀다. 보나마나 퉁명스러울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한 달에 한 번만 전화하라고 했어 안 했어?]
“나 파혼할 거야!”
[……?]
“나 파혼할 거라고!”
못 알아들은 것 같아 다시 한 번 말해 주었다.
[오늘은 뭐야?]
“뭐가 뭐야?”
[뭘 마셨냐고.]
기가 막혔다. 전화선을 타고 나른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실토하란다.
“술 먹었냐고 묻는 거야?”
[위스키? 브랜디? 럼? 진? 보드카? 데킬라? 뭐야?]
파혼할 거라는데 주정뱅이 취급이다. 하지만 그가 열거한 술은 그녀가 평소에 즐겨 마시는 것들이기는 하였다.
“나 정말 파혼할 거라니까?”
그녀가 다시 힘주어 말했다.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퍼 드신 모양이군. 제정신 아닌 걸 보니.]
워낙 까칠한 친구라 저것보다 더 심한 말을 해도 그다지 화나지 않는다. 그의 공격이 더 심해지기 전에 이쪽에서 선수를 치는 수밖에 없다.
“도와줘. 은이반 헬프 미! 지원 사격 바람. 나 지금 한국이다 오버. 약혼자 집에 파혼하겠다고 말씀 드릴거야. 그러니까 제발, 헬프 미. 해방군이 되려는 도레미를 위하여 네가 필요해!”
[미리보기]
“가만있어 봐.”
이반은 눈사람이 된 레미의 머리와 어깨에서 눈을 털어내 주었다. 그 작은 행복에 레미의 눈이 행복하게 구부러졌다. 마주친 눈빛이 뜨겁다. 자석처럼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입술이 부딪혔다. 집어삼킬 듯 서로의 입술을 비볐다. 키스에 집중하며 이반은 더듬더듬 현관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빈틈없이 입술을 맞붙인 채 거칠게 신발을 벗어던졌다.
“흠, 흠!”
어디선가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두 사람은 입술을 맞대어 놓은 채 눈알만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리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은 사장을 비롯한 그녀의 가족이 소파에 앉아 진한 애정영화를 감상하듯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스라치게 놀란 레미가 도둑질하다 들킨 것 마냥 이반의 가슴을 밀쳐냈다.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오래만이다, 도레미.”
‘너는 이제 죽었다.’
이 표정으로 시라가 실실 웃으며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오빠 옆으로 점잖게 앉아 계신 아빠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계신 엄마 표정이 살벌하다. 레미는 냉큼 이반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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