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혁은 낮은 한숨을 내쉬며 수아를 제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하나로 질끈 묶어 내린 그녀의 머리카락과 작은 등을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졌다. 그 손길 아래 몸에서 힘을 뺀 수아가 준혁에게 기댔다. 그리고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있잖아요.”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느껴졌다.
“나중에요. 아주 아주 나중에, 준혁 씨 마음에 내 자리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그러면…… 그때는, 그때는 껴 줄 수 있는 거죠?”
이번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수아의 등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지는 그 따뜻한 손길이 전부였다.
장난처럼, 혹은 투정처럼 싫으면 말고요, 라는 말을 꺼내려고 용기를 그러모으며 마른 입술을 축이려는 그때 준혁이 한숨처럼 대답했다.
“……그래.”
순간 울컥 뜨거운 눈물이 치솟았다. 입술을 깨물어 가며 눈물을 참아내는 수아의 등을 준혁은 여전히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온몸에 온기가 퍼지는 것 같은 따뜻한 손길로.
그 손길이 너무나 따뜻해서, 수아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을 해버렸다. 숨기고 또 숨겨 왔던 그녀의 진심을.
“사랑…… 해요!”
내내 수아의 머리카락을, 등을 어루만지던 준혁의 손길이 우뚝 멈춰 버렸다. 그러다 이내 다시 움직이는 준혁의 손이었다. 마치 수아의 고백을 듣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준혁이었다. 잠시 멈칫거렸던 그 순간이 없었다면 수아도 아마 그가 그녀의 고백을 듣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을 터였다.
‘당신을 사랑하는 일, 참…… 힘드네요.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데, 더 많이도 기다릴 수 있고, 더 오래도 참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힘드네요. 솔직히 겁이 나요. 당신 곁에서 내 사랑은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데 당신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잖아요. 이러다 나 당신을 힘들게 하면 어떻게 하죠? 사랑해 달라고 떼쓰고 나만 봐 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당신을 정말 힘들게 하는 못난 이수아가 되면 어떻게 하죠? 난 그저 내 모든 걸 바쳐서 당신을 안아 주고 지켜 주고 싶을 뿐인데. 정말 그러고만 싶은데, 내 마음이 자꾸 변해요. 욕심을 부려요. 사랑받고 싶다면서. 나, 어떻게 해요. 네? 내 사랑을 비워내지도 당신을 비워내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난 어떻게 해야 해요?’
이를 악물어 가며 흐느낌을 참아내는 수아의 등을 내내 쓸어내리기만 하던 준혁이 움직였다. 두 손으로 수아의 작은 어깨를 잡아 자신에게서 떼어내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아파 보였다. 수아 자신보다 더 아파 보였다.
“미안해요. 미안해…….”
뭐가 미안한지 모르겠다. 그를 사랑해서 미안한 건지, 그를 힘들게 해서 미안한 건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수아의 눈물을 엄지로 닦아낸 준혁이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수아야!”
“…….”
“이수아!”
“…….”
“나는 말이야, 네가 좋다. 네가 참, 좋아.”
‘그래요, 준혁 씨. 그거면 됐어요.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나, 기다릴게요. 언젠가는 당신이 내게 좋아한다는 말 대신 사랑을 말할 날이 올 거라고 믿고 나, 기다릴 거예요.’
한 방울, 다시 한 방울 흘러넘치는 수아의 눈물을 준혁은 닦고 또 닦아 주었다.
‘너라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내 삶의 모든 것들이 가능할 거 같다. 너라면……. 내 곁에 있는 너라면…… 나에게 다 내주고도 또 내주려고 하는 너라면…… 나,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준혁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웃어 보이는 수아였다.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수아였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준혁의 가슴이 더욱더 뜨거워졌다.
“하아!”
낮은 신음을 흘린 준혁은 그대로 수아의 입술을 거칠게 삼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