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아침부터 들려온 벨소리에 갓 구워낸 토스트를 접시에 옮겨 담던 지안이 움직임을 멈춘 채 인터폰을 돌아봤다. 애써 무감한 얼굴로 화면을 응시하던 지안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현관 앞에 섰다.

“무슨 일이시죠?”

반쯤 내린 시선이 떨려왔다. 깊게 눈을 감았다 뜬 지안이 문 너머에 있을 얼굴을 애써 지워내며 숨을 골랐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한 번만 얼굴 볼 수 있을까?

나직하게 가라앉은 음성이 문을 타고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단단히 입매를 굳히고 서 있던 지안이 크게 심호흡을 하곤 도어락을 해제했다. 삐리릭. 전자음이 울림과 동시에 문을 열자 고개를 숙인 채 선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늘 집 앞을 지키고 있단 의식은 하고 있었지만, 정작 얼굴을 마주하고 선 것은 그날 이후 처음이라 눈에 띄게 수척해진 그의 모습을 확인한 지안의 눈은 의지와 달리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마지막이든 뭐든 앞으로 이러지 마시란 말 전하려고 문 연 거예요. 그러니 제발…….”
“앞으로.”

지안의 말을 막아선 태건이 꿀꺽 숨을 삼키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앞으로 그럴 일 없을 거야.”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느릿하게 맞닿은 눈동자가 애잔하게 그녀를 응시했다.

“용서를 구하려는 것 자체가 이기(利己)였던 거지.”

그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걸렸다.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눈에 새기듯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태건이 입술을 움직였다.

“그때 네가 하지 못했던 거. 그거, 이번엔 꼭 하라고.”

그의 얼굴 위로 8년 전 생일, 그녀의 심장을 가르며 들려왔던 음성이 겹쳐졌다.
네 스무 살의 사랑이 나 때문에 슬퍼지는 거, 정말 싫다. 그러니까…… 잊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 따위, 잊어. 잊어버려. 더 이상 아파하지도 말고, 힘들어하지도 말고 행복하게…… 처음부터 그랬던 사람처럼 그렇게 살아.”

데자뷰처럼 느껴지는, 다시금 심장을 가르며 들려온 음성에 저도 모르게 흡, 숨이 쉬어졌다. 냉정을 유지하던 지안의 입술이 굳게 다물려졌다.

“그리고 내일 오전 중에 변호사 사무소에서 전화가 올 거야. 소송 준비는 그쪽에서 알아서 할 거니까 그냥 믿고 맡겨두면 돼.”
“당신이 상관할 문제 아니에요.”
“알아. 근데 이번 한 번만 내 말대로 해줘. 너도 알다시피 유류분 청구만으론 이미 소멸시효가…….”
“불편하니까 이만 돌아가 주세요. 그리고 다신 찾아오지 마세요. 그쪽 말대로 나, 행복하게 아주 잘살 테니까.”

날카롭게 태건의 말을 잘라낸 지안이 똑바로 시선을 맞춘 채 단호히 말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건이 주저주저 입술을 움직였다.

“……고맙다. 그리고…….”

더는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던 지안은 다음에 이어질 말을 듣지 않은 채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지안이 그대로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가버리라지. 사라져 버리라지. 다신 오지 말라지.

주문처럼 외워보지만 몸 안 어딘가에서 폭탄이 터진 듯 혈관들이 크게 요동을 쳤다. 마음이 어지러웠다. 아니, 머리가 어지러운 걸까. 갑자기 몰려오는 현기증에 머리에 손을 올린 지안이 주르륵 벽을 타고 무너졌다.

나쁜 사람. 정말 나쁜 사람. 진짜 나쁜 놈.

가슴 안에서 부글부글 뭔가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부피를 키워가며 끓어오른 것들이 꾹, 가슴을 짓누르며 그녀의 숨통을 옥죄었다. 하아. 가슴을 들썩이며 크게 숨을 쉬어보지만 물에 젖은 수십 겹의 천에 코와 입이 막힌 듯 점점 호흡이 가빠졌다. 도리질을 하며 쾅쾅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에서 줄줄 눈물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