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서기영, 그는

메스를 들고자 하는 이들의 워너비적인 존재이자

최연소 흉부외과 교수였다.

“서기영 교수님이 돌아오신대요.”

5년 전 존스홉킨스 대학의 러브콜을 받고 떠났던 그가 돌아온단다.

“에이, 만우절도 아닌데 무슨 그런 농담을.”

“왜 말이 안 돼.”

여울은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급하게 숨을 삼켰다.

“헉.”

“말해 봐, 은여울. 내가 여기 있지 못할 이유가 뭔지.”

눈앞에 런웨이에서 방금 걸어 나온 듯 모델 뺨치는 자태로 서 있는 남자.

여울은 5년 전 그때처럼 바짝 긴장하며 입술을 달싹인다.

“아, 그게. 그러니까…….”

“질문엔 항상 간단명료하게, 정확한 답만 한다.

그새 잊은 건 아니겠지? 은방울?”

뇌까지 섹시한 미친 외모 앞프로뒤태가 돌아왔다.

<작가 소개>

수현

세계를 매료시키는 작가가 되고픈 사랑 글쟁이.

작가연합 ‘나무 그늘 아래’ 칩거 중.

<목차>

프롤로그

1. 난 스승, 넌 제자

2. 크리스마스엔 징글벨

3. 겨울이 추운 이유

4. Step by step

5. 네 이웃을 사랑하라

6. 오랜만이야

7. 제 마음은요

8.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

9. 여기 우리가 사는 세상

10. 그녀의 모든 것

11.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12. 오픈 하트

13. 이게 사랑인가 봐

에필로그

작가 후기

<본문 중에>

“그리웠다, 은방울.”

이마가 간질거렸다. 손을 넣어 벅벅 긁고 싶을 만큼 심장도 간질거렸다.

사람에겐 어울리는 말이 있고 그렇지 않은 말이 있다. 지금 기영은 그와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리웠다는 말이 이렇게 해석하기 어려운 단어인지 여울은 처음 알았다. 당최 뭐가 그리웠다는 건지, 단어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는 여울의 미간이 당황스러움을 담고 쉼 없이 꿈틀거렸다.

그런 여울을 지그시 내려 보고 있는 기영의 눈가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눈앞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얼굴을 그렇게도 그리워했다. 반듯한 이마와 고집스러워 보이는 짙은 눈썹, 유리구슬같이 동그랗고 반짝이는 두 눈.

높지 않은 콧대로 콧방귀를 뀌어 대는 건방진 모습을 보고 싶었고, 발칙한 입술로 새침하게 톡톡 쏘며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목소리도 듣고 싶었다.

여울은 치장하지 않아도 예뻤다. 청순한 민낯이 더 예쁜 아이.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자신만의 향기가 나는 아이. 그래서 오래 떨어져 있을수록 더 그리워지는 아이. 여울은 그렇게 그리운 아이였다.

심장 속에서 은은하게 울리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보고 있어도 계속 보고 싶은 나만의 징글벨.

생각의 정리가 끝난 듯 여울이 눈을 번쩍 뜨고 기영을 두 눈 가득 담아냈다. 그 눈빛이 조금 불손했다. 치켜 올라간 여울의 한쪽 눈썹을 따라 기영의 눈썹도 너울을 그렸다.

“딸랑딸랑, 놀리는 재미가 쏠쏠한 은방울이 그렇게 그리웠어요? 그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선물이라고 주신 거죠? 와아, 깜빡 속을 뻔했네요.”

여울이 투덜거리며 목에 매인 리본을 흔들었다. 쿡, 기영의 입에서 낮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걸 긍정의 대답으로 오해한 여울이 샐쭉하게 눈을 흘겼다.

“후우.”

기영이 그녀의 얼굴에 가볍게 입바람을 불었다. 반사적으로 질끈 감기는 눈을 얄밉게 살짝 흘긴 뒤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눈 속으로 흘러 들어온 솜털 같은 숨결과 자신을 감싸고 있던 따스한 온기가 사라지는 묘한 경계가 여울의 마음에 살랑 바람을 불어넣었다.

“둔탱이.”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밀어 올리자 투정하듯 제 머리를 헝클이고 한 발 앞서 걷는 기영의 뒷모습이 보였다. 가운을 벗은 기영의 드넓은 등은 병원에서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교수와 써전으로서의 믿음직스러움과는 다른 뭔가가 있었다.

갸웃하고 머리를 기울이던 여울은 기영의 손이 닿았던 머리를 벅벅 긁으며 삐죽 입을 내밀었다.

“다른 남자였으면 진짜 심쿵했겠지.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고 완전 분위기 좋았는데. 아쉽다.”

목에서 부스럭거리는 리본을 휙 돌려 뒤로 보낸 여울이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쪼르르 기영의 뒤를 쫓았다.

기영은 뒤에서 들려오는 여울의 가벼운 발걸음 소리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놀리는 게 즐거워서’라니. 여전히 변함없는 여울의 둔함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한 달 가까이 여울과 있으면서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고 즐거웠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내가 은방울을 아주 많이 좋아하나 보다’였다.

그런데 그리웠다는 말에 돌아오는 답이 고작 저런 반응이라니. 아무래도 레벨을 은방울 수준에 맞춰 내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교수님은 왜 이쪽으로 가세요?”

가까이 다가온 여울이 앞을 한 번 보고 기영을 다시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바래다주시는 거면 괜찮아요. 좀 늦긴 했지만 그리 멀지 않은 데다가 오늘은 사람도 많아서 위험하지 않거든요.”

“알아.”

“네?”

기영이 여울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아무도 널 가까이 하지 않을 텐데. 위험할 리가 없지.”

“…….”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기영의 모습에 여울이 깊게 숨을 들이켰다. 목에 묶인 끈을 기영의 멱살인 양 꽉 움켜잡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이대로 조금만 발랄하게 뛰면 백차가 삐뽀삐뽀 달려올 판이었다. 여울의 눈썹이 불만으로 꿈틀거렸다.

“그리웠던 만큼 목에 매달려 아주 징글징글하게 울려 드립지요, 앞프로뒤태님.”

난 크리스마스 장식용 리본을 달았지만 당신은 그걸 달고 있는 은방울을 달게 될 겁니다. 진절머리 나게 만들어 주리라.

불끈 쥔 주먹을 그의 뒤통수를 향해 흔들던 여울은 기영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자 반사적으로 손을 딸랑거렸다.

“징글벨, 징글벨. 눈이 아주 알흠답습니다, 교수님. 노래가 절로 나올 만큼.”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모호한 얼굴로 눈 내리는 하늘을 우러르는 여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영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어서 오라 손가락을 까닥였다. 손을 내리고 축 늘어진 어깨를 애써 추스르며 여울이 걸음을 옮겼다.

덕분에 고개를 돌린 기영이 웃음을 참으려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 건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