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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아정이 벌떡 일어나 주사기부터 빼냈다. 아내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맨발로 침대에서 내려와 무작정 어디론가 달려가는데, 그런 그녀가 병실 문을 빠져나가기 바로 전 동영이 뒤에서 끌어안아 버렸다.
“언제 왔어? 빨리 가자. 우리 별이 어떻게 됐나 가 봐야잖아. 세상에 무섭기도 하지, 피를 얼마나 흘렸는데 너 아직 못 봤지? 얼른 가자. 별이 기다려. 넌 대체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응?”
“아정아, 그만해. 우리 이제 그만하고 보내주자. 너도 알잖아. 우리 별이 이제 여기 없어. 우리 별이 이미 갔다.”
“무슨 소리야? 내가 여기 있는데, 애가 혼자 어딜 간다고.”
“아정아, 정신 좀 차려. 너 알잖아. 제발 인정해. 받아들이라고. 별이 이제 우리가 보내 줘야 돼.”
아정이 휙 돌아서 동영을 두 손으로 밀어내고는 보기 좋게 따귀를 올려 부쳤다. 부들부들 이를 갈며 입술까지 앙다물며 무섭게 소리쳤다.
“그럼 넌 오지 마. 나 혼자 갈 거야.”“그만해. 제발! 네가 이럼 우리 별이 편히 못 떠나. 바보야.”
“떠나긴 어딜 떠나. 누구 맘대로 떠나. 미쳤어? 미쳤니? 너?”
“그만 하고 보내주자. 제발. 아정아.”
“너나 보내, 난 못 보내. 절대 못 보내. 죽어도 못 보내.”
“아정아.”
“난 못해. 나도 따라 갈 거야. 우리 애기 혼자 못 보내. 같이 갈 거야. 엄마인 내가 가야해. 너 알지? 우리 별이 나 없으면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는 거. 나 없으면 응가도 못 하는 애야. 알잖아. 그런 애를 어떻게 혼자 보내.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애를 어떻게 혼자 보내! 너 정말 그럴 수 있어?”
“힘들어도 해야 돼. 그래야 살아.”
“애 보내놓고 우리만 살아 뭐 할 건데? 그게 사는 거야?”
“그럼 죽어? 너도 따라서 죽고 말 거야?”
“그래. 죽어버릴 거야. 나도 우리 별이 따라 갈 거야.”
“그래? 그럼 나 먼저 죽이고 가. 니들 없이 나 혼자 어떻게 사냐? 나 먼저 죽이고 가.”
“흡흑흑…… 흑흑……흑.”
아정이 그 앞에 철퍼덕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냈다. 그런 그녀 앞에 꿇어 앉아 말없이 가슴으로 안아주는 이 남자의 입술도 여기 저기 피가 터져 흘러 내렸다. 두 사람의 뜨거운 눈물이 병원 안을 가득 매웠다. 별이는 제 엄마 아빠의 가슴 아픈 눈물 때문에 차마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을지 모른다. 어린 부모를 놓아두고 혼자 떠나기가 걱정이 되었는지도.
차마 보낼 수 없었던 어린 부모의 눈물을 보며 아이는 홀로 외로이 얼마나 헤매고 다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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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하필이면 그때 만났던 걸까? 조금 더 늦게 만났더라면, 조금만 더 늦게 만났더라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난 왜 그때, 삼 년이나 널 기다렸을까? 아니, 넌 왜 나 같은 놈을 끝까지 외면하지 못했던 걸까? 우린 왜! 그렇게 일찍 사랑을 해서! 결국 이렇게 돼버린 걸까? 응?”
동영의 눈에 참을 수 없는 벅찬 감정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아정이 제 손으로 입을 막으며 기어이 눈을 감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제대로 사랑할 줄도 모르는 나 같은 놈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나 같은 놈 때문에. 넌, 어쩌면 더 예쁘게 사랑받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응?”
아정이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다시 생각해 보니까, 아니더라. 내가 너한테 했던 지키지 못한 약속들, 그 맹세들 말이야. 그게 내가 어려서 철이 없어 그런 게 아니더라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었다. 모두 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인 거야. 그냥 그것뿐인 거야.”
아정이 동의한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다정히 웃었다. 이제 그 오디션 장엔 두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숨 막힐 것 같은 긴장도, 날카로운 시선들도 모두 소용없는 그림자들일 뿐이었다.
“근데 나 이제 다신 장담 같은 건 안 할 거다. 약속? 맹세? 그런 것도 안 해. 그런 거에 발목 잡혀 묶인 세월만도 얼만데, 대신 지킬 수 있는 약속들만 할게, 감당할 수 있는 맹세들만 할게.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똑같은 실수하지 않을 거다. 언제나 너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꼭 그렇게 여기 새기며 살 거다.”
그가 제 가슴을 두드리며 조금 울먹였다. 아마도 지난 날, 제 아이가 떠올라 그러했으리. 더 좋은 집, 더 좋은 먹거리, 더 더 좋은 옷가지들. 모두가 다 아이와 그녀를 위한 일이었지만 그것이 제 아이를 보내는 일이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어린 날의 아픔이 떠올랐으리라.
“한치 앞도 모르는 먼 미래에 맘 묶어 두고 지금 당장 내 곁에 있는 너, 몰라보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나…… 다신 죽어도 안 할 거다.”
“흑…….”
아정이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가 제 가슴을 다시 두드렸다.
“다시는 너 혼자 내버려두지도 않을 거다. 더는 네게 미안해도 안 할 거다. 그냥…… 지금 아정아…… 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말이다. 사랑한다, 공아정. 사랑한다.”
“……흡흑.”
“너한테 그 어떤 걸로도 보상이 안 되겠지만 내가 애쓸게. 내가 더 애써볼게. 그러니까 나랑 결혼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