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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서! 아침 거르지 말랬지?"
"미안. 누나. 너무 바빠서. 오늘만!"
사업가를 꿈꾸는 천진난만 남동생과 함께 월세방에서 살고 있는 연서.
오늘도 변함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던 그녀는,
서른을 앞둔 그녀의 생일.
8년만에 우연히 첫사랑과 일터에서 재회한다.

"이번 프로젝트에 거는 기대가 크네."
"네, 회장님."
스무살에 홀연히 미국으로 떠난 뒤,
건축과 경영학 수업을 받고 8년만에 돌아온 남자 정우.
오랜만에 만난 옛친구와 잘 지내고 싶지만,
온몸으로 그를 거부하는 그녀 때문에 평범한 대화도 나누기 어렵다.

"생일 축하해!"
정우의 빈자리를 8년간 지켜주었던 민현.

"넌 나한테 돌아오게 돼 있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여자 성은.

한편 예전 준서와의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된 연서와 정우는 계속 부딪힌다.

"넌 여전히 제멋대로야!"
"어쩔 수 없어. 난 내 마음이 가는대로 할 거고."

과거의 상처를 잊고, 다시 잘 지낼 수 있을까?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본문 중에서-

“그만 좀 가줬으면 좋겠는데.”
정우는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주문한 커피를 홀로 마시고 있었다. 연서가 아무 말 할 수 없게끔 다섯 잔이나 시켜 두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느긋했지만 사실은 그런 식으로 초조한 마음을 달래는 중이었다. 하나 내심 거슬렸던 연서는 결국 참지 못하고 다가가서 한마디 했다.
“여기 자리도 많은데. 혼자 자리 쓴다고 막 내쫓아도 되는 거야? 난 대신 다른 사람 3배는 마시고 있다고.”
“그게 아니라. 영업에 방해가 되잖아.”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신문만 읽고 있잖아.”
“알아, 아는데.”
연서가 이마를 짚었다. 어딘지 얄밉지만 정우에게는 묘한 힘이 있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말문을 막아 버리는 시원시원한 말투. 아니 그와 동시에 생글생글 웃는 밝은 얼굴이 문제인가.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할 말이 있어. 예전의 일. 사과도 하고 싶고.”
정우는 딱히 대답하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연서는 애써 태연하려고 했지만 다시 예전 기억이 떠올라 불편해졌다. 무엇보다 눈앞의 정우를 무시하지 못하는 제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아까부터 온 신경이 그에게 쏠려 있었다.
“나는 할 말 없어. 가. 이러는 거 실례야.”
“너 마칠 때까지 기다릴게.”
“선약 있다고 했잖아. 시간 낭비하지 말고 가.”
“그럼 약속해. 언제 볼 수 있는지.”
일부러 차갑게 말했지만 어깨를 으쓱하며 여유롭게 웃는 정우였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굳건히 버티면 연서의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을.
“네가 안 가면 내가 억지로라도 가게 만들 거야.”
그렇지만 그녀 역시 더 이상 스무 살 어린애가 아니었다. 연서는 시위하듯 아직 커피가 남아 있는 정우의 잔을 쟁반 위에 담았다. 그러고는 더 이상 정우가 그녀에게 아무런 여지를 남길 수 없도록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미리보기]

딩동.
“누구세요?”
늦은 저녁을 먹으려던 연서가 초인종 소리에 달려 나갔다. 레인지 위에 그녀가 끓인 찌개가 끓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이라 긴장한 연서가 다시 한 번 “누구세요.” 하고 묻자, 현관문 너머 “나야.” 하는 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진형이 돌봐 줬다고 해서. 고마워.”
안심한 그녀가 문을 열자마자 정우가 군밤을 내밀었다. 방금 샀는지 맨손으로 잡기에는 좀 뜨거웠다. 연서는 노란 속살이 비치는 군밤 때문에 침을 꼴깍 삼키고 대답했다.
“괜찮아. 나도 즐거웠어.”
거기까지 말하고 나니 자연스러운 침묵이 흘렀다. 무슨 말이라도 잘 하려다 보면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법이다. 연서는 “군밤 잘 먹을게.” 하는 인사와 함께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때 문틈으로 정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응?”
“나도 오므라이스 좋아하는데.”
연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우를 쳐다봤다. 정우는 제가 말해 놓고도 어이가 없는지 웃었다. 지금 작업실로 가봐야 제대로 된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연서는 문손잡이를 붙들고 그냥 닫아 버릴까 망설이다가, 결국 한숨을 쉬고 활짝 열어 주었다.
“와, 맛있겠다.”
식탁에 마주 앉자, 그녀가 차린 음식을 보고 정우가 감탄했다. 예전엔 곧잘 같이 식사했는데 처음 있는 일처럼 어색했다. 연서는 무심결에 말했다.
“많이 피곤했나 봐.”
“왜. 다크서클 티 나?”
“아니. 오른쪽 눈에 쌍꺼풀.”
말과 동시에 제 눈두덩 위에 쌍꺼풀을 그리는 연서를 보고 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원래 쌍꺼풀이 없는 그였지만, 많이 피곤하면 오른쪽 눈에 한 개가 생기곤 했다.
“잊지 않았네?”
“아, 뭐. 그야.”
“…….”
“워낙 독특해서.”
내심 기뻐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연서는 아차 싶었다. 그녀는 얼른 밥을 한입 떠서 제 입에 밀어 넣었다. 이놈의 입 막아 버려야지. 어느새 양 볼이 퉁퉁해진 연서를 보고 정우는 작게 웃었다.
“어?”
“무슨 문제 있어?”
“그게 아니라. 새우가 들어 있네.”
그러던 중 달걀말이에서 뭔가를 발견한 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연서는 새우를 잘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편식하는 음식이었다.
“억지로 먹어 버릇 했더니 좋아졌어. 너도 좋아했잖아.”
연서는 말하고 나서야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아하. 그으랬구나?”
정우는 감탄인지 애교인지 모를 이상한 소리를 냈다. 저도 모르게 2연타로 실수한 연서는 쥐구멍이라고 찾고 싶었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식사에 집중하는 것뿐이다.
“난 다 먹었어!”
손에 모터라도 달린 것처럼 열심히 숟가락질을 한 그녀는 2분 만에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어찌나 꾸역꾸역 밀어 넣었는지 밥풀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런 연서를 보고 정우는 반쯤은 신기하다는 듯, 반쯤은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체하겠다. 천천히 먹어야지.”
“그럼 난 좀 일어날게.”
“잠깐만. 나도 같이해.”
“아냐, 괜찮아.”
허둥대는 연서를 보고 정우도 마음이 다급해졌다. 서둘러 숟가락을 내려놓는 정우를 보며 연서는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말고 좀 더 앉아 있으라고 만류하려는 찰나 정우와 손이 겹쳤다.
“앗!”
찌릿. 순간 전류가 연서의 머리를 강타했다.
“…….”
연서는 불에 덴 것처럼 서둘러 양손을 부여잡았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어쩔 줄 모르는 그녀에게 정우가 먼저 사과했다.
“미안.”
그러고는 이어진 정적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딩동.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연서는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현관으로 뛰어갔다.
“네, 누구세요!”
“택배입니다.”
이번에는 준서가 주문한 물건이 도착했다. 그녀는 아저씨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문을 닫고 잠시 그것들을 어디로 옮길까 고민했다. 상자는 두 개였는데 무게는 세 배나 차이가 났다. 연서는 일단 무거운 것부터 집었다.
“끙차.”
“내가 들어줄게.”
팔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중력에 연서가 신음하자, 정우가 바로 뛰어왔다. 연서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는 반강제적으로 그녀의 상자를 빼앗았다.
“그래, 그럼.”
“윽!”
그러고는 역시나 무거운지 잔뜩 힘이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바보. 잘난 척하더니. 상자 하나에 쩔쩔매는 모습에 연서는 웃음이 났고, 그녀 역시 남은 상자를 들고 뒤따랐다.

목차

1. 재회
2. 괜찮은 척하기
3. 네가 아프면 나는
4. 오므라이스와 팝콘
5. 비밀 작전
6. 돌아오다
7. 러브 어게인
8. 꿈과 일상 사이의 거리
9. 외면하고 있던 것들
10. 미로
11. 길 위에 서다
12.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기
13. 고백
14. 진정한 자유
15. 새로운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