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셰프>

사람들은 누구나 오해를 사고판다. 그리고 그 오해에는 항상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의 배경, 학벌, 이해관계라는 창문으로 세상을 보고 마치 좁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사람들은 그 창문 안에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 믿는다. 여기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창문을, 하지만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왔다. 같은 목표와 꿈, 그리고 실타래처럼 엉킨 인연. 과연 그들은 그들이 자라온 배경을 무찌르고 오해와 편견을 벗어낼 수 있을까?

권우혁 (29살)

가난한 귀공자, 요리하는 귀공자, 쿨 한 귀공자, 그에게 별명은 많다. 중학생 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가족의 식사담당을 맡게 된 그는 언젠가부터 요리사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15년간 요리로 다부져진 몸매에 훤칠한 키, 귀티가 흐르는 외모. 19살에는 전국기능대회도 모자라 국제올림픽대회에서 한인최초로 요리부문에서 금메달 따 한국 요리계의 샛별이 되었다. 말쑥한 외모로 주변 사람들에게 ‘도련님’이라 오해받기 십상이지만, 사실 그는 그저 평범한 집안의 차남이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밑으로 동생들이 많아 육남매라는 것과 선우기업 전(前) 회장이 그들의 후견인이라는 것 뿐. 무뚝뚝한 인상을 가졌지만 그의 요리를 맛보는 고객들에게만큼은 멋진 스마일을 지을 줄 아는 남자, 언뜻 보면 차가워 보이지만 사실 분홍색 앞치마도 꺼려하지 않고 드라마를 즐겨보는 남자, 덕분에 주위의 오해를 달고 사는 이 남자가 어느 날 한 여자를 만났다. 우는 모습이, 참 예쁜 여자를.

그 여자를 보며 그는 빙그레 웃었다.

……당신, 우는 모습이 참 예뻐.

유희진 (28살)

그녀가 싫어하는 남자는 딱 세 부류로 나뉠 수 있다. 부잣집 도련님인 걸 티내는 놈, 부모님 능력을 자기 것인 양 우쭐대는 놈, 여자능력을 무시하는 놈. 이렇게 재력에 찌든 도련님들을 싫어하는 그녀가 사실 최근 국회의원에 당선된 유권중 의원의 외동딸이라는 걸 주위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아버지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요리사의 길을 택한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L호텔 프렌치 레스토랑 쟝 펠티에의 젊은 나이로 수 셰프(Sous Chef)에 올랐다. 규수답지 않은 명쾌함과 철저한 서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녀, 치마보다 청바지, 와인과 치즈보다 소주와 곱창을 즐기는 그녀, 남자들의 세계로 소문난 요리계에서 거뜬히 살아남은 그녀가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났다. 말 그대로 그녀의 인생에 툭, 하고 떨어진 한 남자.

제기랄, 그럼 그 때 그 남자가 이제 내 헤드 셰프란 말이야?

밥맛없는 도련님일 것 같은 이 남자가 묘하게 끌리는 이유가 뭘까.

우는 모습이 참 예쁘다고 말하는 그에게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 새디스트에요?

달콤 쌉쌀한 열정이 가득한 그들의 로맨틱 코미디!

권씨육남매 ‘차남’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본문 중에서 

“넌 주방에서 사랑에 빠진 적 있어?”
그는 또다시 폭탄 같은 발언을 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희진은 멍한 시선으로 눈꺼풀만 느리게 깜박였다. 살짝 벌어진 입술로 나오는 숨결이 그의 손 위로 흩어졌다.
“너도 나처럼 요리에 미쳤잖아. 항상 주방에만 살았을 것 같은데 아냐?”
지독히도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고 있었다.
말할 거면 가만히 제자리에서 할 것이지, 우혁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시야에 날렵한 그의 얼굴이 서서히 차올랐다. 서늘한 눈매가 어딘가 애틋했다. 미칠 듯이 유혹적이다. 남성적이고 관능적인 입술이 슬쩍 벌려져 있다. 연장근무고 뭐고 전부 던져 버린 것 같다. 눈빛이 매혹적이지만 위험스럽게 가라앉아 있다.
그 눈빛에 사로잡힌 희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어 갔다. 그저 그의 눈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맞부딪힌 시선, 점점 다가오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
“응?”
그가 되물었다. 동시에 희진의 귓불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채근하는 그의 목소리가 다른 무언가를 요구했다. 감길 듯 말 듯 한 눈꺼풀에 그가 아른거렸다. 꽃향기에 흠뻑 젖은 후각이 그 와중에도 그의 강한 체취를 맡았다.
입술이 부딪힐 것 같아 희진은 저도 모르게 눈을 꼭 감았다. 그러나 몇 초가 흘러도 입술엔 아무 느낌이 없었다. 사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뺨에 그의 체온이 가깝게 느껴지더니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간질였다. 희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자신의 얼굴을 비켜 가 등 뒤에 있던 진달래 하나를 딴 우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가 희진을 바라보며 꽃을 삼켰다.
“나 너한테 키스할 뻔했다, 방금.”
희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우혁은 수려한 미소를 지었다. 입속의 꽃을 짓이기자 달지만 씁쓸한 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마치 키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