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결혼을 피해 아파트 8층에서 외줄을 타고 피해 7층으로 도망친 정혜원. 달랑 팬티만 입은 남자에게 며칠만 숨겨달라고 매달렸지만 냉정하게 쫓겨 날 뻔 했다가 빨래, 청소, 밥을 해준다는 조건으로 겨우 남자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분문 중에서]
[통닭 냄새인데, 닭 시켜 먹었어요?]
개 코다. 젓가락이 탁! 소리가 나면 식탁에 도로 가지런히 내려진 순간부터 혜원은 두려움에 떨었다. 꼭 초등학교 때 숙제를 해가지 않아 차례로 매를 맞기 위해 교탁 앞으로 나가 서 있던 때 같았다.
[솔직해 집시다 우리. 정말 그런 겁니까?]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리는 혜원을 그는 정말로 매섭게 쳐다봤다. 그럴수록 혜원은 더더욱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꼬마가 되어 고개를 숙여야만 했고 이렇게 들킬 줄 알았다면 소파 밑에 감추는 추접스러운 짓을 하지 말걸, 하는 후회가 마구마구 밀려 왔다.
[이 봐요. 치사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통닭 한 마리 때문에 이런 말 하는 거 아닙니다. 인간 관계에서는 기본적인 신뢰감이란 게 있습니다. 혜원 씨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내 집에 들였던 건, 당신 눈에 있는 절박함과 진실함을 봤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리고 당신 입으로 노력하겠다는 의사표현을 분명히 했고, 또 나는 어제 그걸 봤기 때문에 점점 더 혜원 씨를 믿었고 말입니다. 그런데, 고작 내가 하루 출근하고 왔는데 내가 없다는 것으로 나태하게 청소도 않고 찬거리 살 돈을 집에서 통닭이나 시켜 먹고, 이래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말해 보세요. 이건 서로간의 믿음을 깨는 일이잖아요.]
길게 말을 늘어놓긴 하지만 종국엔 닭 시켜 먹었다고 구박하는 거 아닌가. 갑자기 서러웠다. 지갑만이라도 제대로 챙겨 들고 나왔다면 이렇게 남의 집에 얹혀 있지도 않았을 테고, 치사하게 통닭 시켜먹었다고 구박 받지도 않을 테니까 말이다. 닭 한 마리 시켜먹었다고 신뢰 운운하며 인간을 신용불량자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닭 똥 같은 눈물이 뚝 떨어졌다. 제기랄, 왜 눈물까지도 닭 똥 같다고 했는지.
[이봐요! 왜 울어요!]
[그쪽이… 겨우… 닭… 한….]
혜원은 말을 마저 다하지도 못한 채 목 놓아 울었다. 이제 내가 죽을 때까지 통닭 먹나 봐라. 어엉, 아니야. 내가 이 집에서 나가 지갑만 찾으면 맨 날 통닭만 시켜 먹을 거다.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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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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