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사고로 다 읽지도 못한 소설에 빙의했다.
제국의 공작인 킬베르크가의 하녀로 들어온 지 하루 만에 빙의가 됐지만 하녀라는 직책은 조연 중의 조연. 쉽게 죽을 일은 없다고 생각해 안도했는데 이 하녀에게 비밀이 있는 것 같다.
봄날의 꽃잎만큼 은은한 연보랏빛 눈동자, 달빛이 부서질 때마다 은은하게 드러나는 은발까지. 조연이라기엔 보통의 외모가 아닌 이 하녀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난 뒤부터 모든 게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는데…….
* * *
“걱정 마. 다프네. 내가 너를 찾으러 왔으니까.”
밤하늘보다 더 짙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나타난 남자는 다프네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프네는 다치고 쓰라려 피딱지가 엉겨 붙은 제 손을 그에게 내밀지 않았다.
“아니요, 돌아가세요. 그리고 두 번 다시 저를 찾지 마세요.”
“아니.”
남자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서릿발 같은 서늘한 눈을 한 남자는 다프네에게 명령했다.
“돌아와라, 다프네. 나는 한 번 놓친 사람을 두 번 다시 놓치지는 않아.”
[작가 소개]
[본문 중에서]
아직 바깥에 오래 있기엔 다소 추웠던 터라, 그녀는 숄을 더 당기며 앞을 여몄다.
그걸 보던 테일런이 코트 단추를 풀기 시작하자 다프네는 제게 덮어 주려나 싶어 그를 흘긋거렸다. 그런데 테일런이 단추만 풀고 미동조차 없자 제가 미역국을 마셨구나 싶어 다프네의 귀가 새빨갛게 익었다.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되지.”
다프네의 반응을 가만히 지켜보던 테일런은 피식 웃으며 제 코트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덮어 주었다. 하긴 명색이 공작이고 신사인데 신사도가 없을 리가. 다프네는 그의 코트 앞섶을 깊숙이 끌어당겼다.
“들어가려고 했는데.”
“바깥바람이 쐬고 싶어서 나온 거 아니었나?”
“그건 그렇죠. 아, 들어갈 거면 가셔도 돼요. 여러 영애가 당신과 춤 한번 추고 싶어서 야단들이던데.”
“……정혼자를 이 차디찬 테라스에 놔두고 다른 여인과 춤을 추는 난봉꾼이 되라고?”
“아.”
“잊지 마, 다프네.”
테일런은 다프네의 몸을 돌려 마주 보고 선 뒤 그녀와 거리를 좁히며 눈동자를 마주했다. 희뿌연 숨결이 어두운 밤공기에 스며드는 게 보일 정도로 거리가 퍽 가까웠다. 그는 다프네가 쥐고 있는 제 코트 깃을 잡으며 단추를 손수 잠가주었다.
“내가 네 정혼자고, 너 또한 내 정혼자라는 걸 잊어서는 안 돼.”
시끌벅적한 연회장 안과 달리 고요한 테라스 위로 조금씩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테일런은 다프네의 코끝에 떨어진 눈을 조심스레 손가락 끝으로 문질러 털어 냈다.
저와 시선이 맞닿은, 영명한 연보랏빛 눈동자가 언제부턴가 가슴 한구석에 묘한 진동을 일으켰다. 자그마한 울림이 웅웅 소리를 내며 일렁일 때마다 그는 이게 하잘것없는 연극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로맨스판타지, 서양풍
빙의물, 계략남, 다정남, 집착남, 도망여주, 외유내강녀,
[목차]
1권
1. 킬베르크 공작가
2. 비밀 사이
2권
3. 위협과 음모
4. 가짜 정혼자
3권
5. 신년제
6. 찻잔 속의 태풍
4권
7. 밀려드는 반격
8. 추격
9.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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