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둘, 둘, 콰르르쾅!
“천둥이 치나?”
천둥치는 소리에 지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이다.
‘붕, 부릉, 쾅!’
그리고 얼마 후, 천둥소리와 같은 굉음을 내며 지혜의 앞에 커다란 오토바이 한 대가 다가왔다. 마치 벌이라도 서는 듯, 그는 기마자세를 한 채로 오토바이에 앉아 있었다. 가죽 재킷에 가죽 바지, 온몸을 휘감은 체인, 구슬인지 뭔지, 각종 쇠붙이가 덕지덕지 옷에 붙어 있었다. 얼핏 해골 모양의 브로치도 보이고. 커다란 헬멧을 쓰고 얼굴의 반은 가죽 소재의 마스크가 덮고 있다. 앞은 잘 보고 다닐지 불안해 보이는 짙은 선글라스, 목에는 빨간 머플러까지. 게다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가죽 장화. 영화에서나 보던 폭주족?
‘이건 또 뭐야?’
“안녕하십니까? 약속을 잘 지키는군요. 그럼 저녁이나 먹으러 가죠. 타십시오!”



“윤지혜, 고집 좀 그만 피워. 너무 많아서 말하기 힘들다는 이유, 하나하나 다 말해줘. 다 들어줄 테니까.”
지혜는 강철의 간절한 눈동자를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절대 모를 거예요. 나랑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 처음에는 그게 좋아 보일 수 있어요. 세상에 이렇게 예쁜 옷도 있었구나 하고 좋아하죠. 하지만 곧 자기 자신이 그 옷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그럼 기분이 어떨까요? 파티에서 내 기분이 그랬어요. 다른 사람들의 표정에 담긴 여유를 보고 여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란 걸 느꼈죠. 당신이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며 사업 이야기를 할 때도,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여자들
의 값비싼 드레스와 보석을 볼 때도, 당신이 프렌즈의 대표란 사실을 알았을 때도, 혜진이란 그 여자를 만났을 때도……기분이 그랬어요. 나와 어울리지 않는 옷을 내가 입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난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 여자구나, 내겐 너무 과분한 남자구나, 어제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어요.”
“아니, 지혜가 잘못 알고 있어. 내겐 지혜가 과분한 여자야.”
지혜는 살며시 그를 밀쳐내며 입을 열었다.
“그런 동정 받고 싶지 않아요.”
“동정이 아냐. 진심이야!”
“지금 내 꼴이 어떤지 아세요? 당신 회사와 계약을 파기하는 바람에 내가 강철 씨와 개인적으로 만난다는 그 사실 때문에……회사까지 그만뒀어요. 맞지 않은 옷을 입으려 했던 결과겠죠.”
강철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 이내 온화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장민석이란 그자와 계속 같이 일할 생각이었어? 차라리 잘됐어. 필요하면 내가 다른 회사 알아봐줄게.”
“늘 그런 식이에요. 강철 씨를 만난 이후로 내가 알아서 일을 처리한 적이 없었어요. 모든 게 강철 씨의 도움을 받아야 했죠. 그게 싫어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난 지혜를 도와주고 싶을 뿐이야.”
“그러니까 그런 도움이 싫다고요.”
지혜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지혜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왜 자꾸 잘해주는 거냐고요? 왜 내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서 도와주는 거냐고요? 언제나 그랬잖아요. 강철 씨가 자꾸 이러면, 자꾸 이러면……어쩔 수 없이 당신이 좋아지잖아요.”
강철은 지혜를 다시 안았다. 이제는 그녀가 힘을 주어 밀어내지 못할 정도로 꽉 껴안았다. 그녀의 귀에 대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윤지혜. 내 마음이 그렇게 움직여. 내 가슴이 그렇게 움직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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