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척이 없는 대학 건물 내 연결 통로. 키가 큰 젊은이의 팔에 붙들린 채, 하나다 키오는 말문이 막혔다.
――어쩌지, 어, 쩌지, 왜…….
심장 박동이 커진다.
지금 키오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은…… 친구, 인 남자다.
깜짝 놀랄 만큼 잘생겼는데도 으스대지 않고, 밝고, 같이 놀면 즐거운, 한 살 연하의 남자. 그가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키오 누나. 나는 키오 누나를 좋아해. 아키토 선배와 헤어지고 나와 사귀어 줘.”
미약하게 소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얼굴이 키오와 바싹 붙었다.
이사하야의 색소 옅은 머리카락이 저녁노을을 받아 붉은색으로 빛났다.
“저, 저기, 이사하야…….”
키오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다물었다.
“아키토 선배보다 내가 더 키오 누나를 좋아하니까.”
키오의 애인, 아키토는 같은 대학의 4학년생이다.
같은 세미나의 선배로 독특한 매력을 지닌 남자다.
하지만 자유분방하고 여자관계도 화려한 아키토 때문에 키오는 수없이 울었다.
아마 이대로 아키토와 계속 사귀어도 그는 특별히 소중히 대해 주지 않을 것이고, 결혼도 안 할 것이다. 아무런 전망도 없는 관계라는 건 안다.
하지만 키오는 프로그래밍의 천재이자 교수에게 평가도 좋고, 어떤 난제도 마법처럼 풀어내는 아키토에게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다.
아키토는 키오를 마치 시녀처럼 매일 부려먹었다. 연애 경험이 별로 없는 키오라고 해도 ‘써먹기 좋은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모범생에 어른스러운 키오는 바쁘고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아키토에게 단순 작업을 마음 편히 떠넘길 수 있는 편리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하지만 정보공학을 배우는 인간에게 아키토는 동경의 대상이다.
아키토의 연구를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 애인이라는 포지션이라면 다른 누구보다 그걸 이루기 쉽다. 아키토 같은 유명인 곁에 머무를 수 있는 기회는 잘 없다.
그래서 키오는 꾸물거리면서 아키토 곁을 떠나지 못했다. 아직 육체관계는 없지만.
“하지 마……. 그런 말을 들어도, 곤란해…….”
더듬더듬 그렇게 대답한 키오의 눈앞에서 이사하야의 표정이 흐려졌다.
“안 돼?”
“그, 안 된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아키토와 사귀고 있으니까…….”
“알지만……. 알지만, 날 봐 줄 수 없어?”
이사하야의 아름다운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팔은 호리호리하고 몸집도 작은 키오의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둥에 떠밀린 키오의 팔에서 노트가 미끄러졌다.
“놔 줘. 사람 오겠다.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아키토 선배가 그렇게 좋아?”
낮은 목소리로 묻자 키오의 몸이 흠칫 떨렸다.
아픈 곳을 찌르는 말이었다.
――일단…… 좋아…… 하는 거지. 사귀는 사이니까.
침묵하는 키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사하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로는 안 돼?”
키오는 떨리는 다리를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하야의 진지한 눈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내가 아키토 선배보다 더 멋진 남자가 되면…… 키오 누나는 날 봐줄 거야?”
붉은빛을 등진 이사하야가 열에 사로잡힌 듯 중얼거렸다.
“내가 아키토 선배보다 좋은 남자가 되면, 키오 누나는 날 선택해 줄 거야?”
이사하야는 호흡이 닿을 만큼 코앞에서 속삭였다. 하지 말라고 밀어내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그 한마디를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 * *
일밖에 모르는 건어물녀이자 남성 경험도 없는 키오 앞에 나타난,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아름다운 청년. 놀랍게도 그는 대학생 때 키오에게 고백했던 이사하야였다?!
당시엔 사귀는 사람이 있어 차 버렸건만, 엘리트로 성공한 그는 다시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대시한다.
거기다 그는 떨어져 있는 7년 동안 키오의 SNS를 꼼꼼히 확인했던 모양인데…?!
“나는 키오 누나 생각만 했어. 계속. 키오 누나를 원했으니까.”
훌륭한 스토커 왕자가 되어 버린 그에게 휘둘린 키오는 그대로 처음을 주게 되고…….
연애포기녀의 앞에 나타나 사랑을 고백하는 백마 탄 왕자님과의 결말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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