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 기집애. 내가 들이대 본다니까 친구끼리 동서지간 하는 건 싫다는 거야. 꽤 괜찮은 남자라고 하던데. 사실 나도 얼굴은 못 봤다만, 펀드매니저에 키가 180은 거뜬히 넘는다고 하고, 생긴 것도 자기 애인보다는 좀 못하지만 보통보다는 아주 상급이라네?” 선주는 고등학교 선배 정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척을 했다. 사실 선주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그린티푸라푸치노의 맛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녹차의 깔끔함과 생크림의 달콤함에 넋이 나갔다. “남선주, 내말 듣고 있어?” “네? 아……, 그럼요. 그러니까 저한테 남자를 소개시켜 주겠다 이 말이잖아요. 정혜선배.”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소개를 시켜주는 게 아니라, 한 번 유혹해 볼 마음이 있느냐 이 말이야.” “글쎄요, 제가 마음이 있다고 홀라당 넘어와 줄 지. 저 이거 한 잔 더 마실래요.” “남선주, 네 매력 정도면 충분하니까 걱정말라구. 상대방은 완전히 고리타분한 아저씨 타입이라고 하니까 몇 번 도끼 질 해 주면 홀라당 발라당 넘어오지 않겠어?” “그렇지만 전 아직 결혼할 마음도 없고, 또 고리타분한 아저씨 같은 타입은 이상형이 아닌 걸요. 아무리 선배 말씀이라고 해도.” 선주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 쿨한 정혜 선배가 웬일로 이런 황당한 제안을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정혜선배의 절친한 BP인 나영 선배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결혼식 빨리 하고 싶어서 아주버님 될 분을 얼른 장가보낼 생각이라니. 그렇다면 유혹에 들어가야 하는 저는 무조건 결혼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는 소리잖아요.” 선주가 들은 대충의 사건은 이랬다. 정혜의 친구인 나영선배가 자신의 너무나 사랑하는 한도진이라는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데, 그 형님께서 미혼이시라 현재 두 사람의 걸림돌이란 것이다. 게다가 부모님의 입장이 형제들의 결혼 순서가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시란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먼저 처치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처치의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적당한 여자를 만나게 해서 먼저 결혼을 시키면, 그쪽 커플도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소린데. “아무래도 저한테는 무리인 것 같아요. 저 스물여섯이에요. 아직 결혼할 나이 아니잖아요.” “결혼할 나이 맞아.” 정혜가 냉정하리만치 차갑게 말했다. “그럼, 저보다 더 연배가 있는 선배는요?” “어머, 그래봐야 나 너보다 한 살 밖에 안 많아.” “한 살 차이가 어딘데요.” 정혜가 카앗! 하고 당장 잡아먹기라도 할 듯, 이를 드러냈다. 선주는 그 천사처럼 말간 눈으로 키득키득 웃었다. 짧은 머리 스타일 때문인지 그 달콤한 생김에도 불구하고 선주는 톰보이의 분위기가 많이 났었다. 복슬복슬 파마를 한 뒤로는, 솜사탕 같은 톰보이란 별명이 붙었다. 정혜가 미끈하게 잘 빠진 다리를 척 꼬며 말했다. “나야, 좀 더 즐길 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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