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나에게 너.
버려지지 않는 미련.
가슴에 아프게 박혀 있는 가시.
낙원의 유일한 이방인.
“말 해.
나를 잊지 않고 있다고, 그래서 알아보았다고 말해.”
She.
나에게 당신.
잊을 수 없었던 유년.
서글픈 추억 속 사진.
발을 멈추고 서 있는 낙원.
“안아주고 싶었어. 그때 그 사람이 나를 안아주었던 것처럼.”
<본문 중에서>
땀이 밴 손을 얽어 문지르고 있던 행동이 딱 멈추어졌다. 되물었으나 그게 바로 정답이었다는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확인하기 두려웠던, 그래서 외면하기 일쑤였던 감정의 실체와 마주했을 때 서희는 심각하게 갈증을 느꼈다. 언제부터인가 긴장을 하게 되면 찾아오는 갈증. 그래서 그가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 옆 탁자에 놓인 조그마한 생수병을 들고 한 모금 물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서희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눈을 둔 채로 침대에서 일어난 강진은, 늘어서 있는 그림들을 검지로 주욱 쓸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차르르 돌아가는 환풍기, 그 앞으로 부채꼴로 펼쳐져 있는 회색빛 음영. 민들레의 하얀 홀씨가 바람에 날리듯 훨훨 날리고 있는 먼지들 속에서 그의 실루엣이 서희를 가득 덮었다. 강진은 서희의 손에 들려 있던 생수병을 탁자로 천천히 옮겨 놓았다.
“여긴 내 낙원이지만…….”
그리고 대신 그녀의 손에 쥐어 준 것은 이 창고의 열쇠였다. 온기가 부딪힌 손가락 하나하나를 서희의 손가락들 사이로 천천히 얽었다.
“유서희, 라는 이방인을 특별히 허락해. 언제든 와도 좋아.”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물린 손가락 사이로 땀이 스몄다.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에 있는 열쇠조차 뜨겁게 달구어져 열정을 부채질했다. 강진은 다른 손을 들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서희의 턱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숨이 얽혀들고 시선이 부딪힌다. 그가 주고 있는 떨림 앞에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 된 서희는 마치 네로가 품 안에서 바르작거리듯, 잡혀 있는 그의 손안에서 벗어나려 비틀었다. 그리곤 어떻게든 이 폭발 직전의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화제를 돌리려 했다.
“……이 말, 꼭 하고 싶었는데요.”
“무슨 말?”
“고맙습니다. 잘해 주셔서.”
“하고 싶은 말, 그게 아니잖아?”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한 강진의 확언이 서희의 뇌리를 내리친 순간, 그가 상반신을 숙여 입술을 부딪혀왔다. 여전히 손가락을 풀지 않은 채로 겹쳐온 그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서희의 아랫입술 언저리를 맴돌았다. 들끓어 오르고 있는 감정을 애써 다독이며 차분하게 쓸어가다 이내 욕심을 내며 그녀의 입술을 가득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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