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에게 그녀의 운명은 맡겨질 참이었다. 장소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깨끗했고, 내부 장식도 상당히 우아했다. 처음 안내된 응접실은 어느 집에나 흔히 딸려 있음직한 그런 곳이었다. 런던의 어느 부촌에 위치한 호화 저택, 좋은 말로 해서 ‘에로스의 집’이라 일컬어졌지만, 사실은 죄악의 온상이었다.
켈시 랭턴은 여전히 자신이 여기에 와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부터 공포와 불안으로 속이 메슥거렸다. 그러나 여기 온 것은 자의에 의해서였다. 누가 때리고 윽박질러 억지로 끌려온 게 아니었다.
이곳에 오는 것만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었다. 켈시 가족은 돈이 필요했다. 길거리로 나앉지 않으려면 돈이,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필요했다.
대책을 세워볼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던들……. 생판 모르는 사람과 결혼한다 해도 이보다는 나으리라. 그러나 엘리엇 이모부의 말이 옳은 것도 같았다. 그들을 도울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을 가진 남자가, 어떤 특권 따위를 얻을 수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겨우 며칠 동안에 결혼과 같은 중대사를 결정할 리가 없다는 것이 이모부의 지적이었다. 우선 섣불리 뛰어들기에 결혼은 너무나 영구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이곳은……, 어쨌든 남자들이 순간적 충동으로 새로운 정부를 얻는 경우는 흔했다. 정부가 아내만큼, 때로는 그 이상 돈이 든다는 사실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주목할 만한 차이점은, 정부는 얻기도 쉽지만, 지루한 법적 절차나 사후에 따르는 스캔들 없이 버리기도 역시 쉽다는 점이었다.
이제 켈시는 누군가의 정부가 될 참이었다. 아내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결혼할 만한 남자를 알지도 못했으며, 아는 남자가 있다 하더라도 엘리엇 이모부의 빚을 갚아줄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더군다나 없었다. 고향 케터링에서는 구혼하는 젊은 미남들이 몇 명 있었다. 그 ‘비극’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그 중 유일하게 수입이 많던 한 남자는 어떤 먼 사촌과 이미 결혼을 해버렸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매일 밤 하던 대로, 지난밤에도 잠자리에 들기 전, 켈시는 수면을 도와줄 우유 한 잔을 데우러 부엌에 내려갔다. 여동생 진과 함께 엘리자베스 이모의 집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수면은 힘겨운 싸움이 되어버렸다.
켈시의 불면증은 낯선 동네에서 살게 되어서도 아니었고, 엘리자베스 이모 때문도 아니었다. 어머니의 유일한 자매인 이모는 매우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비극’이 있고 나서 켈시와 진이 필요로 했던 애정을 듬뿍 담아 두 자매를 반가이 맞아주었고, 조카딸들을 친딸처럼 아껴주었다. 켈시의 잠을 방해하는 건 악몽이었다. 생생한 기억이 되살아나고, 비극을 예방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들이 반추되어 그녀를 괴롭혔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던 어느 날, 엘리자베스 이모가 켈시의 회색 눈 밑으로 검게 깔린 기미를 보고 살살 이유를 캐물은 끝에 권한 처방이 따뜻한 우유였다. 매일 밤 마시는 우유는 정말 도움이 되었다. 우유를 마시는 것은 결국 밤의 의식처럼 되었다. 부엌은 그 시간에 늘 비어 있었기 때문에 켈시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다. 어젯밤만 빼면…….
어젯밤에는 엘리엇 이모부가 있었다. 이모부는 저녁식사가 아닌, 독한 술을 두고 작업대 앞에 앉아 있었다. 이모가 저녁식사 때 허락하는 포도주 한 잔 이외에, 이모부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엘리엇이 술을 마시면 늘 눈살을 찌푸리던 엘리자베스는 집안에 독한 술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술이 어디서 났든, 엘리엇은 이미 술병의 반 정도를 비운 뒤였다. 술이 그에게 끼친 영향은 실로 섬뜩할 정도였다. 울고 있었던 것이다.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테이블 위에 굵은 눈물 방울을 뚝뚝 흘렸다. 어깨까지 가늘게 떨면서 조용히, 숨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이모가 집에 술을 두지 않으려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구나 싶었다.
하지만 켈시의 생각과 달리 엘리엇을 그렇게 비탄에 잠기게 한 것은 술이 아니었다. 그랬다. 엘리엇은 문을 등진 채 앉아 있었다. 자신이 자살을 기도할 동안 누구한테도 방해받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만약 자기가 조용히 그 자리를 피했더라면 엘리엇이 정말 자살했을까, 엘리엇에게 그만한 용기가 있을까, 켈시는 몇 번이나 의아해하고 있었다. 켈시는 엘리엇을 그 정도로 용감한 남자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사교적이고 항상 쾌활한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됐건 지난밤 켈시가 식당에 나타남으로써 엘리엇은 자신은 달리 고려해보지도 않았을 해결책을 얻은 셈이 되었고, 켈시 자신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해결책을 준 셈이 되었다.
“이모부, 무슨 일 있으세요?”
켈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묻는 것뿐이었다.
그러자 엘리엇이 등뒤에 서 있는 켈시를 돌아보았다. 켈시는 목까지 올라오는 잠옷과 가운을 걸친 채, 손에는 아래층으로 내려올 때면 으레 들고 내려오는 램프를 들고 있었다. 순간 엘리엇은 몹시 놀란 듯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떨군 채 다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켈시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되물어야 했다.
엘리엇은 겨우 고개만 들고 말했다.
“저리 가렴, 켈시. 네게 이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
“전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가서 이모를 모셔와야 할까봐요.”
켈시가 고즈넉이 말했다.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