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 어서 열라고!”

“선생님 싫어요, 싫어요!”

열어라, 싫다 실랑이를 지켜본지 1시간째.

은로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중이다.

수천 번의 고민 끝에 선택한 입주 가정교사.

처음부터 쉽지 않을 걸 예상했지만 벌써부터 후회막심이다.

“안녕하세요, 환이 씨?”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랜 시간을 기다려 만난 그는 아주 크고, 너무 잘생기고, 너무나 순수한 밝은 사람이었다.

성인 정신 지체우 환과 특수교사 은로의 만남.

그녀의 부름엔 언제나 “네” 대답해주고,

본인은 비를 맞더라도 손우산을 만들어 가려주고,

모르는 길을 헤매어 가서 그녀가 좋아하는 과자를 한아름 사다주는 남자.

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부지,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그런데, 그런데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 사람한테 가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어요.”

“멍청이.”

세상의 잣대가 편견이 무슨 소용일까? 당신과 내가 이렇게 행복한 우리가 함께 있는데……

“선생님은 지은로. 은빛 길. 나는 빛. 난 은빛 길을 빛으로 밝혀 주는 사람이에요.”

[본문 내용 중에서]

환은 은로의 머리카락을 만져보더니 자신의 얼굴에 문질러보고, 또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은로의 머리카락에서 향기를 빨아 당겼다.

은로는 얼어붙은 듯 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행동을, 그리고 그의 모습을.

살며시 감는 눈. 한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까칠까칠 덥수룩하게 자라난 수염. 쪽 뻗은 높은 콧날. 강인해 보이는 턱선. 굴곡진 광대뼈. 이마를 덮어버린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 사내의 몸과 사내의 손, 그리고…… 사내의 냄새.

환의 모든 것이 마치 휘몰아치는 태풍에 휘말려 성이 난 파도처럼 은로의 가슴에 격정적으로 부딪쳐 왔다.

은로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무슨 이런 기괴망측한 기분이 있을까. 못됐다, 못됐어.

‘미쳤어! 이 사람은 일곱 살짜리 어린애야.’

은로는 당황스러움에 헛기침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환이 씨? 환이 씬 다른 사람이 환이 씨 몸에 손대는 거 싫어하죠? 나도 그래요. 나도 별로…….”

“부드럽다. 좋다…….”

환이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환은 오랫동안 은로의 머리카락을 자신의 얼굴에 문질러보더니 씩 웃으며 머리카락을 놓아주었다. 몹시 만족한 듯한 표정이었다.

은로는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환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이유는, 환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신 때문이었다. 그가 야릇한 사내의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순간적으로라도 그에게서, 일곱 살짜리 그에게서 사내를 느낀 자신에 대한 수치심 때문이었다.

전혀 계획에 없던, 이변에 가까운 감정이었기에 은로 자신도 믿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인사말을 건네며 환이 은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

환이 그렇게 말했고, 은로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환의 손을 잡았다.

“만나서 반가워요. 난 지은로예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환이라고 합니다.”

환이 국어책 읽듯이 인사했다.

“네, 반가워요.”

은로가 이제야 비로소 정식으로 인사를 하게 됐구나, 하며 기쁜 미소를 짓는데, 환이 은로의 손을 들어 올리더니 자신의 얼굴에 비비기 시작했다. 은로가 당황해서 빼려고 하자 환은 은로의 손을 더욱 꼭 움켜잡으며 자신의 얼굴을 문질렀다.

“부드럽다.”

환은 오랫동안 은로의 손을 붙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프로필]

김랑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

soojiddong897@hanmail.net

출간작

［포도밭 그 사나이］(KBS2TV 미니시리즈 포도밭 그 사나이 원작)

［시크릿 다이어리］(KBS2TV 드라마시티 내가 만난 108명의 남자 원작)

［새빨간 여우］

［사랑을 완성하는 마지막 2%］

［행복한 날 마주 보기］

［우리 집에는 늑대가 숨어 있다］

［이브의 정원］

［씩씩한 강이］전3권

［폭풍의 연인］

［연장 후반 14분］

［은밀골방담］

［유혹의 속삭임］

［행복한 우리］

［진짜, 무인도에 떨어졌다］전2권

［막을 수 없는 사랑］

［달콤달콤 천사님］전2권

［로맨스가 딱이야］전3권

［콜라］전2권

［클럽 맨해튼］전2권

［남자의 눈물］전2권

드라마

한중합작 20부작 드라마 ‘초연’ 김정숙 공저

KBS 드라마게임 ‘아파트 열쇠 좀 빌릴까요?’

KBS 드라마시티 ‘못생긴 당신’ 김정숙 공저

KBS 2009 전설의 고향 ‘흡혈귀애’ 김정숙 공저

KBS 2009 전설의 고향 ‘씨받이’ 김정숙 공저

[목차]

프롤로그

제1장 ~ 제6장

에필로그 1. 은로와 환의 첫날밤

에필로그 2. 은로와 환의 아기

에필로그 3. 행복한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