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통보받던 날 들으면서 엉엉 울었던 노래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가 좋아했던 노래
고등학교 시절 무서웠던 음악 선생님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
어린 시절 목을 매고 쫓아다니던 아이돌 가수의 대표곡인 그 노래
짝사랑의 열병을 앓던 시절 꼭 내 이야기 같아서 듣고 또 들었던 노래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 밤, 나를 위로하기 위해 들었던 노래
좋아하는 남자 배우가 좋아한다고 해서 나도 즐겨 듣게 되어버린 노래
고백하던 날 두근거리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면서 들었던 노래
내가 먼저 이별을 고했던 그 사람이 연애하던 시절 노래방에서 내게 불러줬던 노래
완전히 빠져있던 드라마랑 우연히도 테마가 비슷했던 바람에 좋아하게 되었던 노래
학창시절 가창평가 때 유독 예쁜 목소리로 나를 놀라게 했던 여자아이가 불렀던 노래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랑했던 사람이 생전에 많이 좋아한다며 내게 추천해주었던 노래
우연히 듣고 나서 반해버리는 바람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들어보라고 권유했었던 노래
평범한 가사에 평범한 목소리였지만 나도 모르게 틈날 때마다 들었던 어느 여가수의 노래
학교의 인기인이었던 남자아이가 축제날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고 불렀던 노래
영어수업시간에 반강제로 배워서인지 지금까지도 가사도 멜로디도 고스란히 기억나는 노래

뭉뚱그리면 [추억의 노래] 정도로 제목을 붙일 수 있는 소소한 기억들.
여기, 누군가에게 그런 노래로 기억되고 싶은 꿈을 가진 두 남녀가 있습니다.

하나비 여주인공. 보컬리스트.
불꽃놀이도 아니고,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예쁜 나비도 아니다. 그저 하늘에서 터지는 찰나의 폭죽에도 넋을 잃으며 나비처럼 하늘을 날고 싶은 소망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저 자꾸만 누군가에게 버림받아 잔뜩 몸을 움츠린 채로 그저 주변의 평화로움을 바랄 뿐이라고 되뇌는, 흔한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불리는 한 마리 평범한 고양이일 뿐. 목숨을 걸고 매일 밤마다 술탄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세헤라자데처럼 불안하게 높은 무대에 올라서 노래를 하지만 한 번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진심을 오롯이 드러내고 그 처분을 바라본 적이 없는 겁 많은 여자.

윤이안 남주인공. 기타리스트. 인디밴드 Nevermind의 리더.
아름다운 외모. 빛나는 재능. 현명하고 냉철한 이성과,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경력과 경제력. 그 모든 것이 그를 사랑받는 남자로 존재하게 했기 때문에 그는 둔하고 무감각하다. 날마다 여인을 죽이고 또 죽였지만 본인이 얼마나 잔인한 짓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술탄 샤리야르처럼 죄 많은 남자.

그 외)

이그린 윤이안을 짝사랑하는 여자. Nevermind의 드럼 세션.
윤이든 윤이안의 형. Nevermind의 보컬리스트이자 와인바 R의 공동경영자.
연소라 와인바 R 유일의 아르바이트생. Nevermind의 팬.
Nicky Nevermind의 미국인 베이시스트.



-본문 중에서-

그가 웃었다.
“난 말이야, 처음 이 씬에 들어왔을 때, 포부만큼은 정말 거창하고 화려했어. 활동을 시작할 무렵에 신인 밴드 취재하러 왔던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거든.”
이안이 얼굴의 각도를 약간 틀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을 해보였다.
“장르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음악으로 또 다른 사람의 꿈이 되고 싶어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서든, 아니면 한 사람의 작곡가로서이든. 내가 안고 있는 모순조차도 사랑받을 수 있도록 말이죠. ……와,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글오글오글오글.”
풋. 나비의 웃음이 터졌다.
“엄청 진지했네. 그래서? 지금은?”
“지금은 그냥, 나로 인해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뭐, 그렇지.”
“어라, 팍삭 찌그러져 버렸네.”
이안이 겸연쩍게 웃었다.
“뭐, 철이 든 거겠지. 내 노래를 듣고 엄청난 감동을 받아서 인생이 바뀌었어요, 하는 감상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그러니까 아주 별 것 아닌 건데. 프러포즈를 받았는데 그때 흘러나온 음악이 내 음악이었다는 것도 좋고. 혹은 좋아하는 사람과의 약속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때울 겸 음반가게에 들어가 두리번대다 우연히 듣게 된 음악이 내 음악이었다는 것도 좋고. 어디서 내 노래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 보면 그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더라고.”
나비와 이안이 미소를 교환했다. 다독거리는 듯한 특유의 미소가 자꾸 좋아지려고 해서, 이안은 슬쩍 그녀의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그냥 그렇게 누군가의 일부가 되어보고 싶어.”
뒷말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서, 입속에서만 맴돌다 사라졌다.



작가의도_

스무 살. 20대. 어설프게 어른스럽고 어설프게 어려서 만사 서툴기만 한 어린 연인의 연애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풋사랑을 거쳐 이제 진짜 사랑을 하기 시작한 그들이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스스로 극복하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 다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허락하는 법을 배워가는 이야기를 소소하고 재미있게 그려보고자 했습니다.
정답 없는 현실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부대끼며 깨지고 다치고 유치하게 굴고 부끄럽게 제 기분에 취해 까불고. 그렇게 독특하지만 또 평범한 20대들의 연애와 일상. ‘사랑’이라는 목적지는 있지만 아직 방향성은 아직 없기에,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한 칸 두 칸 차근차근 계단을 오르는 연인들의 이야기, <계단 위의 연인>입니다.

10월 12일 생.

그녀가 속한 세대에는 결코 흔하지 않은,
4남매의 맏이라는 신분에 대한 불타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
친구들이 풋사랑에 매달리던 그 시절부터
홀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장래의 희망 급여액을 가늠해보았던
뼛속까지 완벽한 속물근성의 현실주의자.

그렇기에

거역할 수 없는 운명으로 엮인 두 남녀의 불꽃 같은 연애보다는


어느날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감싸면서 비로소 인간다워지고,
그렇게 나란히 생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흐뭇한 과정을 그리고 싶은

일편단심 선아 언니 holic의 말 많은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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