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마르시아나의 펜던트……! 그 열쇠지요? 그걸 왜 오라버니가 갖고 계세요?”

제국 황실 연례행사인 유물 전시회에 출품될 ‘마르시아나의 펜던트’가 행사를 몇 주 앞두고 도난당한다. 수수께끼 의뢰인으로부터의 펜던트 절도 의뢰, 그 펜던트를 열 수 있는 마르시아나의 열쇠, 열쇠를 이용해 펜던트 도둑을 체포하려는 나이트와 그 열쇠를 손에 넣어 펜던트와 한 세트로 만들려 하는 엔젤 퀸시. 300년 전 전설 속 연인의 유품과 그 유품에 얽힌 비밀에 관한 이야기, ‘마르시아나의 열쇠’!

“저……. 죄송해요. 놀라셨죠?”

“저보다는 지아 양이 놀랐지요. 제 걱정은 마십시오.”

퀸시는 불안하게 테이블보를 쥐었다 폈다 하는 조그만 손을 꼭 잡아주고 싶은 것을 참았다.

“아는 사람인가요? 그쪽에서는 꽤 친한 척을 하던데.”

그녀가 다시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가 한숨처럼 길게 내뱉었다. 짙은 눈동자에 처음으로 수심이 깃들었다. 소녀나 여학생의 것이 아닌, 사랑을 아는 여인의 눈빛.

그것만으로도 퀸시는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윽고 지아는 그가 우려하던 바로 그 말을 했다.

“……제 전 약혼자예요.”

2. 작가 소개

빈즈(Beans)

취향에 맞는 책을 찾고 찾다, 어느 날 아예 직접 글을 써버리기로 결심, 웹 연재게시판에 첫 글을 올린 후 3년간 꾸준히 집필한 소설이 ‘세인트 루이 기숙학원(Saint Louie Academy)’이다.

개인적인 욕심에 시작한 글이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개인지 제작과 eBook 발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보다는 읽는 것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쓰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면 언제라도 글 쓰는 즐거움을 다시 누리고 싶다.

현재는 직장에 다니며 틈틈이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삶의 소소한 낙이다.

▣ 출간작

세인트 루이 기숙학원

3. 차례

‘세인트 루이 기숙학원’의 eBook 독자님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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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리 보기

엔젤 퀸시는 신문을 내려놓았다.

그의 경험상, 독서는 기차여행의 가장 훌륭한 동반자였다. 그러나 모든 읽을거리들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사의 내용은 분명 흡족했지만, 달리 읽을거리가 없다 보니 차내에 굴러다니던 것을 우연히 집어 읽은 것인지라 따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더구나 퀸시는 허영심이 다소 강한 편이었다. 자신의 업적과 관련된 기사를 읽으면서도 이를 자랑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공허함을 안겨줄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섰다.

아나톨리아의 일반 객실은 깔끔하기는 했지만 호화롭지는 않았다. 소박한 침대, 실용적인 나무 테이블과 의자, 장식 없는 선반과 뼈대를 고스란히 드러낸 행거 정도가 가구의 전부였다. 샤워실과 세면시설은 청결했으나 호사스러운 거품 목욕을 즐길 욕조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어딜 가든 최고급 디럭스 룸에만 묵었던 퀸시는 이 점이 약간 불만이었다. 그러나 곧 그는 ‘이것도 일’이라며 자신을 위안했다. 이번 일만 무사히 마치고 나면, 그는 여태까지 해온 일에서 손을 털고 다른 대륙으로 넘어갈 작정이었다. 거래가 이루어질 장소가 마일랴 행 특급열차로 잡힌 것은 따라서 그에게 다행이었다. 마일랴에 내리면, 곧바로 대양을 건너 퀸시의 이름으로 예약된 호화 여객선에 오르리라. 운이 좋다면 이 열차 안에서나 배 위에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줄 연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자들이 자신을 좋아하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엔젤 퀸시는 댄디하고, 핸섬하고, 부유하기까지 한 실업가였다. 물론 실업가라는 것은 진짜 직업을 감추기 위한 위장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여성의 호감을 사는 데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세면대 위에 달린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니다……!

이번만큼은 무언가 달라야 한다.

‘이것이 이 대륙에서의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하니 새삼 쓸쓸한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퀸시는 일시적인 슬럼프 상태라고 불러야 할 것에 빠져 있었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대로, 세련되고, 유머러스하고, 유능한 사내였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이러한 자신의 겉모습에 혹하여 접근해오는 아가씨들은 물론 한둘이 아니었다. 허나 그녀들로부터 짧고 강하게 불타오르는 쾌락 이외에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화려하고 관능적인 여성들의 환심을 산 결과 그에게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엔젤 퀸시는 우울해졌다. 그렇다고 몸단장을 게을리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꼼꼼히 확인했다. 러프하게 헝클어진 잿빛 머리는 실은 세심히 연출된 스타일이었고, 그는 그것이 자신의 짙은 눈썹과 이국적인 그늘이 드리워진 푸른 눈동자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장신인 데다 체격도 좋은 퀸시의 몸은 잘 피트되는 네이비 수트에 싸여 있었다. 그는 포켓치프와, 한껏 멋을 부려 맨 은색 넥타이를 다시금 매만졌다. 그러고는 손목을 들어 천천히 시계를 확인했다.

8시 30분.

어쩌면 빈속에 음식을 집어넣는 것이 기분전환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사실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약간 늦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퀸시에게는 딱 적당했다. 아나톨리아 호 내에는 간이매점과 레스토랑, 바가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었고, 그는 물론 별 다섯 개짜리 레스토랑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이 시간이라면 그곳에는 손님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천성적으로 사람들과 쓸데없이 부대끼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그의 일을 고려하더라도 남의 눈에 띄는 행동은 피하는 것이 현명하게 여겨졌다.

그는 벽에 걸린 모자와 외투를 낚아챘다. 외투를 걸치기 전, 수트 안주머니에 고이 넣어둔 주머니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안에 든 것은 회중시계처럼 차갑고 묵직한 감촉을 지닌 물건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가진 어떤 시계보다도 값비싼 것이었다.

아니, 돈으로 그 가치를 환산할 수나 있을까?

‘관리 및 보존 문제라.’

그는 신문기사를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수석 비서관이라는 폰테인 남작으로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터- 전시 예정이었던 유물 중 하나는 바로 퀸시의 안주머니에 들어 있었으니까!

본래는 ‘세인트 루이 특별전’의 주요 전시품이었어야 할 그것은, ‘마르시아나의 펜던트’라 이름 붙여진 물건이었다. 세인트 루이의 전설의 연인이라는 레이디 마르시아나, 그녀가 소장했던 펜던트였다. 그것도 단순한 펜던트가 아니라 로켓처럼 열어서 안에 초상이나 머리카락을 넣을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펜던트와 한 세트여야 할 열쇠가 없었으므로 안에 든 내용물은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전시회가 열리기 두 주 전, 의뢰를 받고 스노 화이트 관의 보관실에 잠입해 펜던트를 훔쳐낸- 업계 용어로 말하자면 ‘옮긴’- 것이 바로 퀸시 자신이었으므로 열쇠가 없다는 것은 분명히 확인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열쇠가 그를 이 열차에 타게 한 이유이기도 했고.

식당으로 향하는 퀸시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일반 객실이 있는 차량은 통로가 비좁고, 기차 소음으로 시끄럽고, 춥기까지 했지만 그에게 장해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엔젤 퀸시는 제국 남부 해안에서 관광객의 지갑을 슬쩍하던 열 살 소년시절부터 20년 가까이, 민첩함과 정확성을 자랑하는 절도 전문가였다. 처음에는 좀도둑에서 시작해 소매치기, 빈집털이, 금고 해제 등으로 점점 수준을 높여 마지막에는 미술품 절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퀸시는 스스로도 예술 애호가임을 자처하고 있었으나, 근본적으로는 실익을 중시하는 도둑이었다. 일이 가져다주는 스릴과 높은 보상은 가히 중독적이었다. 곧 그의 존재는 골동품과 미술품을 거래하는 암시장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그는 보안을 위해 매번 가명을 사용했고, ‘엔젤 퀸시’라는 것도 이번 일을 위해 그가 쓰고 버릴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추측건대, 이번 일의 의뢰자 또한 골동품 애호가임이 틀림없었다. 이토록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일을 시키는 걸 보면 정부 고위관리거나, 명예를 중시하는 제국의 귀족일지도 모른다. 퀸시로서도 일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면 대환영이었다. 그래도 상대방에 대해 거의 모르는 채로 거래를 진행하는 것은 조금 껄끄러운 일이었다- 현재로서는 ‘마린스키’라는 이름과, 또 하나의 작은 표시만이 그가 거래 상대방에 대해 가진 정보의 전부였다. 아나톨리아 호에 타고 있는 동안, 즉 앞으로 6일 안에 그는 ‘마린스키’라는 자를 만나 퀸시 자신이 ‘옮긴’ 펜던트에 맞는 열쇠를 건네받아야만 했다. 그 거래가 끝나고 펜던트와 열쇠를 처음 의뢰인에게 안전히 전달해야만 그는 자신의 몫을 전부 챙길 수 있을 터였다. 거래를 무사히 치르는 수고비는, 펜던트를 전시품 보관실에서 자신의 손안으로 ‘옮기는’ 대가로 받은 선금의 무려 다섯 배에 달하는 액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