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어떻게 하면 너 꼬실 수 있냐?”

삶이 너무나 재미없고 무료한 신활, 한곳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그의 눈에 원더우먼이 들어왔다! 글래머에 큰 키, 센 언니처럼 생겨놓고선 한없이 마음 약하고 남만 위하는 반전매력 그녀 방세옥.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그녀가 더 이상 그렇게 웃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 신활은 7년의 바라보기를 끝내고 그녀에게 다가가기로 한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담겨 있는 건 다른 사람인데…….

“궁금하다구요! 요즘 계속 궁금했다구요!”

멈춰 섰다.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자는지,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궁금했어요. 이러면 안 되는데 계속 궁금해요. 궁금해서 미치겠다구요!”

자기 딴에는 큰맘 먹고 하는 소리일 것이다.

소심한 그녀가 뒷일 생각 않고 솔직히 말해주니까 나는 고맙다. 귀엽고 고맙다.

“얼마나 미치겠는데?”

“……많이요. 아주 많이요.”

2. 작가 소개

이선미

1971년 대구 출생.

성숙한 사람들의 사랑, 철부지들의 사랑, 자기애, 집착 등 사랑의 다양한 측면을 그리고 싶어 하는 작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담아내는 로맨스소설을 쓰는 것이 목적이라고.

▣ 출간작

아라사의 서우여

석빙화

광란의 귀공자

10일간의 계약

커피프린스 1호점

하록과 배태랑

달의 시 外

3. 차례

#원더우먼

#사돈처녀

#아웃사이더

#반창고의 향기

#티타임

#59년 왕십리

#돼지 꼬리

#모닝콜

#바나나

#페퍼민트

#미쳐야 사는 남자

#엄지손톱보다 작은 절

#쌍무지개

#우두망찰

#사랑마루

#新히피족

#우리 집 우물엔 고래가 산다

#보내기 번트

#빨간 추파춥스

#거미발

#바다에서 온 편지

#푸른 기와집 아저씨

#후기

4. 미리 보기

차 안에는 산울림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3월이지만 아직 개나리는 일러 드문드문 목련꽃 봉오리가 아련했다. 하늘은 옥빛으로 맑고 구름은 잔잔한 가운데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대륙에서 황사만 오지 않으면 우리 봄은 정말 황홀한데 말이다.

“왼쪽에 산 보여?”

그를 지나쳐 산을 보았다.

“보여요.”

“끝자락에 봐.”

“정잔가? 되게 작다. 절인가 보네요?”

산자락 끝에 작은 절이 있었다. 손을 뻗어 대어도 엄지손톱보다 작은 절.

“저런 데 어떻게 지었을까. 절에 다니세요?”

산자락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그 아랜 절벽이라 누가 톡 밀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았다.

“여기 지나면서 자주 보는데 처음엔 저기 위에 있었어.”

“위에서 아래로 옮긴 거예요?”

“아니, 조금씩, 조금씩 저절로 내려온 거야.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서 조금씩, 조금씩.”

“절이요? 에이, 거짓말. 절이 어떻게 내려와요? 절이 땅에 턱 올려져 있는 게 아니잖아요. 땅 속에 뿌리가 있는데 어떻게 그래요? 저한테 장난치시는 거죠?”

그는 웃지 않고 진지한 표정이었다. 진지하니까 헛갈려서 다시 절을 보았다.

“전설이 있어.”

그가 얘기했다.

“옛날에, 얼마쯤 옛날인지 모르겠는데, 저 절에 한 젊은 스님이 있었어. 산꼭대기인 데다가 절이 워낙 작아서 사람들 왕래가 적었는데, 어느 겨울에 신혼부부 한 쌍이 절에 왔어. 우리처럼 이렇게 멀리서 산을 보다가 절에 호기심이 생긴 거지. 근데 워낙 산길이 험한 데다가 날이 빨리 저물어서 내려갈 수가 없었어. 하는 수 없이 부부는 하룻밤 묵었지. 스님들 중에 가장 나이가 어렸던 그 젊은 스님이 밤새 군불을 때줬어. 아궁이 불에 감자 같은 것도 구워줬겠지. 그 절에서 나고 자란 그 스님은 그때 여자를 처음 봤어.”

“떨렸겠다.”

“그랬겠지. 다른 흑심이 생겨서가 아니라 그냥 그 여자가 고왔겠지. 지금 식으로 말하면 첫눈에 반한 건지도 모르고. 어쨌든 스님은 여자가 오래 머물렀으면 했어. 그 마음이 무척 간절했어. 자꾸 눈에 밟혀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상사병에 걸린 건지도 모르지. 다음 날 눈이 많이 왔어. 너무 많이 와서 도저히 산을 내려갈 수 없을 정도였어. 하는 수 없이 부부는 하루 더 머물기로 했지. 스님은 일단 좋았지만 내일이면 부부가 떠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어. 고민 끝에 남자의 다리를 부러뜨리기로 했어.”

“네에! 설마…….”

“여자 다리를 부러뜨릴 순 없잖아.”

“그래도 그렇지.”

얘기는 흥미진진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경치 좋은 곳 보여준다고 데려가 밀 작정이었어. 눈이 와 미끄러우니까 조금만 밀면 발목 정도 부러지고 말겠거니 했지. 근데 남자가 행방불명이 됐어.”

“진짜 밀었어요?”

“응. 실수로 보이게끔 살짝 밀었는데 남자가 데구루루 구른 거야. 어디론가 떨어졌어. 근데 어디로 떨어진 건지 찾을 수가 없었어. 스님은 겁에 질려서 찾아 헤맸지. 그래도 부처님을 모시는 스님인데 말이야, 엄청난 짓을 저지른 거잖아. 미친 듯이 찾았는데도 찾을 수가 없었어. 스님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찾다가 포기하고 말았어. 남자가 돌아오지 않으니까 여자가 돌았겠지. 며칠이고 산을 뒤지면서 남자를 찾아다녔어. 그러다가 저 절벽에서 떨어져버린 거야.”

“죽었어요?”

“죽었겠지.”

“남자는요?”

“스님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어. 남자가 밤마다 피를 흘리며 스님을 찾아왔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지. 스님은 점점 시름시름 앓았어. 그러다가 어느 날 스님은 죽었어.”

“그냥 그렇게요?”

“아니. 심장에 나무로 만든 칼이 꽂혀 있었어.”

“아, 그 남자다! 그죠?”

“글쎄, 그건 확인이 안 됐어. 의미심장한 건 그 뒤로 저 절이 조금씩 조금씩 움직였다는 거야. 눈이 많이 오면 마치 미끄러지듯이 조금씩 움직여서 지금 저 자리에 있게 됐다는 거지. 여자가 떨어진 절벽 아래를 굽어볼 수 있는 바로 저 자리에.”

“어머…….”

“재밌는 전설이지?”

“좀 슬퍼요. 무섭기도 하고.”

고개 돌려 멀어진 절을 봤다. 그러니 정말로 절이 절벽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스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모르겠어요. 여자에 대한 마음은 애틋하지만, 남자를 다치게 한 건 좀 그래요.”

“그렇게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신 대리님은 이해하세요?”

“그 호칭 참 맘에 안 든다.”

다 그런 거지 뭐. 난 내 이름 전혀 맘에 안 든다고.

“어떻게 하면 너 꼬실 수 있냐?”

“아이 참, 신 대리님까지 그런 장난 하실 거예요? 내가 만만한가. 구 대리님 맨날 날 잡자는 것도 지겨워 죽겠는데, 정말.”

“무슨 날을 잡아?”

“상견례요. 이러다 정말 혼삿길 막히겠네. 구 대리님도 민아 언니나 하영이한텐 안 그러면서 꼭 나한테만 그래요. 내가 만만해요?”

“구 대리 다리를 부러뜨려야 하나?”

“그럼 절 이야기 속편 되겠네요?”

나는 농담으로 받아치며 키득키득 웃었다. 무슨 그런 험악한 농담을 하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