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남자, 사랑을 한 번도 해 볼 수 없었던 여자가 만났다. 그래서 많이 서툴고 때로는 서로를 아프게도 한다. 그러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배워나간다. 첫 만남부터가 예사롭지 않더니 사랑이라 알게 되고 인정하게 되는 과정도 험난하기만 한데…….
서른 살의 솔직한 여자가 말하는 좋아하는 남자를 넘어오게(?) 만드는 기술, 노처녀라고 무시하지 마라! 인형 같은 외모에 완벽한 몸매는 아니지만 오묘한 매력으로 남자를, 그것도 킹카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사랑이 예기치 않은 일들로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데…….




-본문 중에서-

한동안 앉아만 있어서인지 다리도 저리고 머리가 멍한 게 그제 서야 그녀는 자신이 좀 취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최대한 중심을 잡고 걸으려고 정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일직선으로 걷기위해 노력 중이던 그녀 앞에 갑자기 나타난 검은 물체가 앞을 가로막으며 그녀와 충돌했다.
“아얏.”
“뭡니까! 눈 없습니까?”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길을 막은 것도 열 받는데 다짜고짜 화를 내는 검은 물체에 찬희는 지금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저기요. 먼저 부딪힌 건 그쪽이거든요.”
“먼저 가는 길 막은 건 그쪽입니다.”
그녀의 목이 뻐근할 정도로 높이 고개를 치켜들어야만 보이는 얼굴에 잔뜩 성이 나있었다.
“내가 언제 그쪽 가는 길을 막았다고 그래요? 갑자기 나타난 건 그쪽이잖아요.”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걸으면서도 앞이 훤히 다 보입니까? 무슨 초능력잡니까!”
남자는 부딪히면서 묻었는지 검은 슈트에 하얗게 얼룩진 화장품을 털어내며 짙은 눈썹을 찡그리고는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아, 아니. 내가 언제 고개를 숙이고 걸었어요? 그리고 유치하게 초능력은 무슨…….”
찬희는 술에 취해 자신이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워낙 싸가지 없는 표정과 말투에 남자에게 왠지 지기 싫어졌다. 그래서 양심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일단 우기기 작전에 들어가기로 했다.
“유치? 유치한 건 그쪽 아닙니까? 다 큰 어른이 술에 취해서 자 잘못도 구분 못하고 그렇게 억지 쓰는 거야 말로 유치한 일입니다.”
남자는 찬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하다 술 냄새가 진동하기라도 한 것처럼 코를 틀어 막았다.
“뭐라고요!”
“이제 말도 잘 못 알아듣습니까? 성인이 잘못을 했으면 사과는 하는 게 도리라고 말한 겁니다.”
“이봐요, 난 잘못 한 것도 그쪽한테 사과할 이유도 없어요.”
“없는 게 아니라 없다고 믿고 싶은 거 아닙니까.”
“이봐요!”
“그렇게 크게 안 불러도 안 그래도 보고 있습니다.”
찬희는 그렇지 않아도 주량을 간당간당 넘긴 술 때문에 온 몸에 열이 나던 차에 사람을 깔보고 비아냥거리는 게 주특기라도 되는 듯 삐딱한 자세로 흥분한 자신과는 달리 목소리 하나 높이지 않고 할 말 다하는 이 괴물 같은 남자 때문에 붉으락푸르락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꼭 그 고추장 멸치 대가리처럼.
“저……저기 일단 잠깐 조금 있다 봐요. 지금 아주 급한 일 때문에 어딜 좀 가던 중이라서…….”
“도망치는 겁니까?”
분명 방금 전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작은 일이었는데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천둥번개를 동반한 쓰나미가 일어난 배를 부여잡고 찬희가 최대한 자제하며 한 말을 남자는 싹둑 잘라버리고는 그녀가 비겁하다는 듯 한 쪽 입 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웃었다. 그 모습에 찬희는 또 욱 하는 성질을 못 이기고 앞 뒤 가리지 않고 지르려던 찰나 다시 그 분이 오셨다. 그것도 조금 전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초특급 울트라 캡숑 쓰나미가. 더 이상 참기 힘들어진 찬희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도……도망, 헉, 치는 거 아니, 윽, 거…… 든요.”
“그럼 사과를 받아야겠는데.”
“사과고 키위고 나발이고, 헉, 비켜, 어!”
“지금 뭐라고 한 겁니까?”
“아, 진짜, 비이, 켜, 어. 비키라고!”
한계에 다다른 찬희는 있는 힘껏 남자를 밀치고 오직 화장실을 향해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렸다. 소주와 어묵 국물이 섞여 뱃속에서 요동치는 바람에 찬희는 눈앞에 노래질 지경이었다.
“뭐야. 저 아줌마가 진짜!”
“!”
“아줌마, 이봐, 거기 서!”
윽!
또 다시 들어 버렸다. 아. 줌. 마! 그것도 하루에 두 번씩이나! 남자는 찬희가 자신을 밀고 도망친 거라 생각 하는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연신 아줌마와 ‘거기서’를 반복하며 외쳐댔다. 평소의 그녀라면 따따따 쏘아 붓치고 한 방 시원하게 날려 주겠지만 지금 그녀는 위급상황! 삐요 삐요! 빨간불이 켜져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자꾸만 뒤에서 들려오는 아줌마란 소리에 그 남자의 주둥이를 꿰매 버리고 싶었지만 일단 찬희는 질주본능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남자의 입이 아닌 터질듯 한 자신의 엉덩이를 꿰맬 수가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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