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이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던 거구나. 내가 그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 것처럼, 그 역시 나를 잃을까 봐 두려워했었구나.

위험한 여름 수련회 현장에서 간신히 목숨을 구한 아르민. 하지만 기억을 잃어버린 그녀를 보고 이안은 위험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아챈다. 한편 나오미 공주의 생일파티에 초대된 지아는 그곳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잡게 되지만 동시에 이안을 잃어버리는 슬픔을 겪게 되는데…….

그가 내 쪽으로 손을 뻗는 것과 동시에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일어난 일은, 아마 나중에 기억을 더듬어도 제대로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데다 나는 말할 수 없이 혼란스러웠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어떤 게 먼저였을까?

그가 내 손을 잡아끈 것과, 내 발이 바닥에서 떨어진 것.

그의 팔이 나를 향해 활짝 벌어진 것과, 내가 그의 품을 향해 뛰어든 것.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건-그의 두 팔이 내 등을 힘껏 껴안았고, 꼭 감았던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그의 품 안에 있었다는 것뿐.

2. 작가 소개

빈즈(Beans)

취향에 맞는 책을 찾고 찾다, 어느 날 아예 직접 글을 써버리기로 결심, 웹 연재게시판에 첫 글을 올린 후 3년간 꾸준히 집필한 소설이 ‘세인트 루이 기숙학원(Saint Louie Academy)’이다.

개인적인 욕심에 시작한 글이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개인지 제작과 eBook 발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보다는 읽는 것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쓰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면 언제라도 글 쓰는 즐거움을 다시 누리고 싶다.

현재는 직장에 다니며 틈틈이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삶의 소소한 낙이다.

▣ 출간작

세인트 루이 기숙학원

3. 차례

10-2. 여름 수련회

#11.

#12.

#13.

#14.

#15.

#16.

#17.

#18.

11. Happy Birthday

#01.

#02.

#03.

#04.

#05.

#06.

#07.

#08.

12. Monolog

13. 깊어가는 9월

#01.

#02.

#03.

#04.

#05.

#06.

#07.

#08.

#09.

#10.

#11.

4. 미리 보기

‘지아가 만약 이동을 했다면 어느 쪽으로 갔을까?’

그는 반시간 전 징검다리를 마주했을 때 스친 생각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았다. 천만다행으로 계곡은 사람 하나가 휩쓸릴 만큼 깊지는 않았다. 물에 빠진 게 아니라면 지아는 분명 나름의 생각을 갖고 어느 쪽으로든 갔을 것이다. 그 고집 센 아이가 제자리에서 누군가 오기만을 기다릴 리는 만무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는 더더욱 불안했다. 공연히 돌아다니다가 들짐승의 습격을 받기라도 한다면……. 혹은 물로 미끈거리는 계곡에서 넘어져 어디를 다치기라도 했다면……. 그는 불길한 생각을 물리친 후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지아는 영리하니 인기척이 느껴지면 알아서 이쪽에 도움을 청할 것이다.

한밤중의 계곡이 위험한 장소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지아가 과거에 겪은 아버지의 사고 때문에 계곡을 유독 두려워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비록 그녀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몰라도, 해리엇을 따라오지 않았다는 건 계곡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겁을 냈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지아는 다른 길을 찾으려고 했을 것이다. 아마 물을 건너야 하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을. 이안은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자문해야만 했다. 북부의 험한 지형에 익숙한 그에 비하면 그녀는 여기서 걸음마도 제대로 못 하는 어린애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지금쯤은 그녀의 흔적이 눈에 띄었어야 한다. 계곡 이편이건 저편이건, 물길을 따라 걷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어야 한다. 그의 머릿속은 지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해 마스터의 별장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저쪽으로 밀어둔 지 오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손전등을 가져올 것을……. 그는 자신의 불찰을 탓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지아가 산에서 실종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만, 그래도 사고에 대비하여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것은 명백히 그의 실수였다. 마스터의 별장에는 구급약과 식량, 여벌의 옷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마음을 놓는 게 아니었다. 그를 더 마음 졸이게 한 것은 몇 분 전부터 거칠어지기 시작한 바람이었다. 경험상 이런 바람이 불면 반드시 한 시간 내로는 하늘이 비를 토해내기 마련이었다. 맙소사……. 이 어둠 속에서 비까지 내린다면 지아를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전에서 본 지아가 아닌가. 그는 다시는 그녀가 끔찍한 일을 겪게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해리엇뿐 아니라 지아를 구해 내지 못한 자신을 두고두고 책하게 될 것만 같았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계곡 폭은 좁아졌으나 물살은 조금씩 강해졌다. 흐르는 물에 깎이어 모서리가 무디어진 중류의 돌들과는 달리, 이곳의 돌들은 끝이 제법 날카로웠다. 건너편을 살피기 위해 계곡에 붙어서 걷던 그는 옆으로 약간 물러났다. 급한 마음에 실수를 했다가는 지아를 찾지 못하게 된다. 사실 아무런 단서 없이 이 넓은 산 속에서 사람을 찾겠다는 것부터가 무모한 행동이었다. 먼저 해리엇과 함께 수련원으로 가서 구조대를 부르는 편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아가 무사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이 손으로 직접 그 아이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 주어야……. 그는 어둠 속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려오는 내내 어찌나 주먹을 꽉 쥐었던지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