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대리 아내 아르바이트(Fake Wife)

#챕터1

키르(Cherry Kiss)

2014년.

두 남자가 어느 중학교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한 남자는 주름과 근심이 가득한 40대 중반 남성이었다.

그런 촌스러운 남자와 나란히 걷고 있는 남성은 화려한 외모를 가진 20대 후반 외국인 남성이었다.

외국인 남성은 금빛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웃었다.

“오늘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아니요. 오히려 저희가 감사하죠. 정말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40대 남성은 한참 어린 외국인 남성에게 허리가 아플 정도로 굽실거렸다.

“귀하신 시간을 우리 학교에 조금이라도 투자해 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아이들을 좋아하거든요. 특히 사춘기 시절을 겪는 아이들과 교감하는 걸 꿈꾸고 있었답니다.”

“아하하, 그러시군요.”

40대 남성은 외국인 남성을 상대하는 게 껄끄럽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작게 웃었다.

“응?”

어느 교실 앞을 지나가던 도중 외국인 남성이 발걸음을 멈추고 창문으로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교탁 앞에 선 여자가 내지르는 힘찬 목소리가 복도까지 울려 퍼졌다.

“목표를 가져 보세요. 교과서에 나온 이론이나 문법을 가르치기 이전에 제가 여러분에게 꼭 전해주고 싶었던 말입니다.”

여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목표를 알게 되었을 때, 그건 여러분의 삶에 큰 힘이 되어 줄 겁니다. 여러분이 이 학교를 떠날 때까지 그 목표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와 주세요. 미약하게나마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여자가 열변을 끝내고 5초 정도 지났다. 학생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교감 선생님.”

외국인 남성은 여자에게 시선을 꽂은 채 말했다.

“저분은 제법 젊으신 것 같은데, 교사분이신가요?”

“아, 저분은 오늘부터 교생 실습을 나온 양지혜라는 분입니다.”

“양지혜…….”

외국인 남성은 양지혜라는 이름을 되뇌며 손가락으로 턱을 쓸었다.

“저 여자라면…… 괜찮을 것 같아.”

그는 만족스러워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2018년 6월 12일 화요일.

“지혜 씨. 정말로 괜찮은 거 맞아?”

오늘 하루 다섯 번이나 실수를 저지른 지혜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데 김 과장이 그런 말을 꺼냈다.

“네? 아, 네. 저는 괜찮은데요.”

“별로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

김 과장이 “쓰읍.” 소리를 내며 숨을 삼켰다. 탐탁지 않아 하는 눈빛을 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정말로 괜찮아요! 그러니까 계속 일하게 해주세요!”

“아니, 일해 주면 우리는 고마운데 말이야.”

지혜는 다급해졌다.

공장에서 단순 조립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지혜로서는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정을 아는 김 과장이기 때문에 ‘나가.’라는 말을 쉽게 입에 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김 과장 눈에는 지혜가 저지른 실수보다 더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지혜 씨 팔에 그 멍은 뭐야?”

“네?”

방금까지 필사적으로 떠들어대던 지혜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아…….” 하고 신음만 내뱉었다.

“어제 귀가하던 중에 자전거랑 부딪쳤거든요. 요즘 밤에는 눈이 잘 안 보여서 그만…….”

“자전거랑 부딪쳤다고?”

“네. 자전거랑 부딪쳐서 생긴 멍이에요.”

김 과장은 의심하는 낌새를 숨기지 않고 눈에 힘을 주어 지혜의 멍을 노려보았다.

“오늘은 잔업 없으니까 있다가 시간 맞춰서 퇴근해요.”

“저 계속 일해도 되는 거죠?”

“나중에 부장님한테 물어볼게요.”

그 말을 남기고 김 과장은 자리를 떠났다. 뒤도 안 돌아보는 등을 보니 이미 대답은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혜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받치며 터벅터벅 작업현장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