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프롤로그
웅장한 홀리데이 호텔의 대형 연회 룸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즐기는 사람들과 홀 중앙에 마련된 라운지에서 춤을 추는 커플들까지 한 해를 시작하는 신년 파티 분위기로 한층 고조된 상태였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 역시 매스컴이나 인터넷을 통해 자주 접하는 정부 고위층 인사에서부터 인기 영화배우, 연예인, 모델, 교수, 사업가 등 사회 각계에 걸쳐 다양했다.
지수는 투명한 샴페인 잔을 잡은 손에 바싹 힘을 주었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당연하지. 준비한 대로, 연습한 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하지만 이곳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미 얼굴 근육까지 딱딱하게 굳어 버린 그녀였다.
긴 샴페인 잔을 기울여 한 모금을 깊게 들이켰다. 알싸한 맛이 식도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 간다. 가늘게 떨리는 손끝을 보니 알코올조차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민호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지수의 두 눈은 줄곧 사진에서 수없이 보았던 그 모습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찾았다!
지수는 절로 깊은 숨을 들이켰다.
마침 거의 동시에 누군가 그의 팔을 잡아끌자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옆에 바싹 붙어 서 있는 젊은 여자였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는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는, 아무나 소화하기 힘든 붉은빛 레이스 드레스 차림이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연예계에서 꽤 알려진 스타급 여배우였다.
지수는 그 틈을 타 상대 남자를 더 은밀히 관찰했다.
사진을 통해 수없이 그려 왔던 이미지와 실제로 본 남자의 모습은 큰 차이가 있었다. 하긴 사진 몇 장과 피상적인 정보만으로 강재헌의 모든 것을 보여 주긴 무리일 테니까.
어쨌든 그 많은 유명 인사 중 강재헌은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
MJ 제약의 부대표라는 직함과 비즈니스맨으로서의 화려한 이력만으로 충분히 이목을 끌면서도 그 사람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남성적 아우라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지금도 여자들이 노골적인 관심을 드러낸 채 그의 주변을 맴도는 것이 보일 정도다.
꿀꺽,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것은 다른 여자들과 다른 이유에서 비롯된 긴장 때문이었다.
좀 더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이 모든 상황이 어색할 뿐이다. 특별히 강재헌을 눈에 담자 그 긴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아슬아슬해졌다.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무슨 말인가 하자 아까의 그 여배우가 간드러지는 웃음을 터트렸다. 상체를 살짝 숙인 동작으로 인해 깊이 팬 풍만한 가슴 곡선이 반 이상 드러났다.
풋, 절로 쓴 미소가 번진다.
그 여자의 의도가 몇 미터 떨어진 지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자신의 몸으로 강재헌의 마음을 홀리는 것.
그 기회를 놓칠세라 여자의 가슴을 은밀히 훔쳐보는 주변 남자들과 달리, 여자의 표적이 된 재헌은 별 감흥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냉소적이면서도 시니컬한 표정이었다.
의외다. 저런 표정을 짓다니.
아니면 그 이상으로 고단수인 걸까?
어쩌면 단순한 미인계가 안 먹힐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직 강재헌 하나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한 달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그러니 시작하기도 전에 겁먹고 뒷걸음쳐서는 안 되는 거다.
그래, 침착하자. 떨지 말자. 계획대로 하면 되는 거야.
바로 그때였다.
지수는 절로 숨을 훅 들이켰다.
돌연 재헌이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었다.
찌릿, 강렬한 스파크처럼 두 사람의 눈이 허공 위에서 만났다.
방심하다 일격을 맞은 기분이 이럴까?
어찌 피할 사이도 없이 그대로 사로잡힌 그 강한 눈빛에 가엾은 심장이 제 기능을 못 한 채 미친 듯 팔딱거리기 시작했다.
착각이 아니라면 그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분명 그녀였다.
왜? 설마 내가 지금껏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챈 걸까?
최대한 은밀하게 지켜보고 있었다고 믿었건만…….
미리보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