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24절기의 시작이라는 입춘도 며칠 전에 지나갔다. 하지만 겨울의 끝자락에 있어서인지 한밤중에는 여전히 온몸이 절로 움츠려드는 매서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밤 열한 시경.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고급 전원주택지로 향하는 도로에는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간간이 차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도시의 중심지를 벗어난 이곳엔 자그마한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강바람 때문에 때로는 겨울이 더 춥게 느껴지기도 했다. '강 위를 지나가는 50여 미터 안팎의 짧은 다리를 지나자마자 자그마한 사거리가 나왔다. 마침 사거리에 은색의 BMW 차량 한 대가 다른 자동차들과 함께 멈추어 섰다. 그 차를 운전하고 있는 젊은 남자는 잔뜩 구겨진 인상으로 아랫입술을 꽉 다문 채 손가락으로 초조하게 핸들을 두드리고 있었다. '“뭐 급한 일, 있어?”'뒷좌석에 앉은 남자의 어머니가 남자의 초조한 손놀림을 보며 걱정스레 미간을 찌푸렸다. '“네? 아니에요.”'남자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고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지만 지금 자신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고 다니는 영상들이 떠오를 때마다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젠장, 망할 기집애!'생각할수록 눈이 시큰거리고 골이 부서질 듯 아파왔다. 스물일곱 해를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사귀는 여자가 다른 사내와 알몸으로 뒹굴던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기보다 자존심이 상하고 분한 감정이 앞섰다. 어떻게 하면 이것들에게 앙갚음을 해줄까 하는 생각만 하루 종일 하고 있었다. '남자는 핸들을 여자의 목이라도 되는 양 세게 움켜잡았다. 차라리 그 때 보는 즉시 그 쓰레기들의 목을 비틀어 버렸어야 했다. '남자는 그 생각을 할수록 숨이 막힐 듯이 가슴이 답답해져와 안전벨트를 신경질적으로 풀어버렸다. 그 때 뒤에서 빵빵! 하고 경적이 울림과 동시에 뒷좌석에 앉아 있던 남자의 아버지가 미간을 찌푸리며 짧게 입을 열었다. '“지하야, 신호.”'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남자는 좌우를 살피지 않고 급하게 차를 출발시켰다. ''“설마 운전하려는 건 아니죠?”'부산으로 화물을 싣고 가는 중이라는 중년의 트럭운전사가 늦은 저녁을 해결하러 기사식당에 들렀다. 그리고 습관처럼 소주 한 병을 반주삼아 식사를 마치고는 일어나던 참이었다. 카운터에 서서 지갑을 꺼내는 사내를 보며 식당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렇게 물은 거였다. '“왜 아뇨?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가야 제 시간에 도착하는구먼. 얼마유?”'“아이고, 지금 제정신이에요? 소주를 한 병이나 마셨구먼. 여기서 조금이라도 쉬었다 가요. 사고라도 나서 황천길에 먼저 도착하고 싶어요? 지금은 늦은 시간이라 손님도 별로 없으니 잠깐이라도 눈 붙이고 가요.”'사내는 여자의 염려가 성가시게 느껴져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신경질적으로 꺼내서 던지다시피 건네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