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가뜩이나 좁은 사무실에 색색의 천조각과 크기가 불규칙한 목재들, 그것을 다룰 때 필요한 여러 가지의 공구들이 여기 저기 널브러져있었다. 거기다 갖가지의 서류뭉치들이 한데 모여 사무실은 한 마디로 난장판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무엇이 그렇게 분주한지 두 여자는 쉴 새 없이 손과 발을 움직여 자르고 붙이고 있었다. '“교수님. 이것은 어디에다 붙일까요?”'“아. 그거 3 번 서류에다 붙여. 혜미야 미안해. 오늘만 지나면 좀 한가해 질 거야.”'“큭큭. 정말 한가해 질 수 있을까요?”'혜미의 반문에 세경은 민망함으로 얼굴이 달아올라 고개를 푹 숙여야했다. 일주일 동안 밤새 일을 시켜놓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이렇게 일을 시키고 있으니 세경은 혜미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다. 혜미는 세경이 서른한 살 먹은 노처녀였지만 매우 순수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농담 섞인 질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많이 미안해하고 있음을 알았다.'“교수님! 지금 저에게 미안해 하셨죠?” '세경은 무슨 죄인 마냥 고개를 여전히 숙인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혜미는 가슴이 아프고 무너져 내렸다. 사년 전만해도 저렇게 농담과 진담을 구별 못 할 정도로 재미없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그녀가 태어나 처음 사랑했던 남자가 다른 세상으로 떠난 날이었다. 사실 아주 급한 일도 아닌데 벌여놓은 그녀를 보며 혜미는 세경이가 일로써 자신의 슬픔을 다스리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파도 마음 놓고 아파 할 수 없는 그녀를 보며 혜미의 가슴도 편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울해 할 수 없기에 혜미는 명랑한 말투로 투정을 부렸다. '“아이 참. 교수님 앞에서는 앙탈도 못 부린다니까요.”'“미안하지. 나랑 같이 일 하고부터 개인 시간도 많이 뺏겼잖아.”'“저도 좋아서 하는 일이고 또 돈도 받고 하는 일이랍니다. 어머! 교수님, 벌써 8시가 넘었어요. 우리 저녁은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아. 그래. 미안해. 뭐 먹을까? 머리도 식힐 겸 나가서 먹고 올까?”'“그럴까요?”'둘이 저녁 메뉴를 정하고 외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경은 노크소리에 들어오라고 허락했지만 그 주인공이 누구일지 안 봐도 알기 때문에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혜미는 세경이의 인상을 보며 등장할 사람이 누군지 짐작이 돼 테이블 위에 잔뜩 올려진 서류 뭉치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의자에 가득 올려진 천∨조각을 서둘러 치우며 앉을 공간을 마련했다. 곧이어 회색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중년 여인이 양쪽 손에 음식으로 추정되는 보따리를 들고 등장했다.'“쯧쯧. 사무실 꼴이 이게 뭐니? 돼지우리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도둑이 들어와서 헤집어 놓았다는 생각도 하겠다. 일도 정도 것 해야지. 언제까지 결혼도 안하고 이럴 거니? 네 나이가 벌써 서른을 넘겼어.”'그 중년 여인은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입버릇처럼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세경은 늘 듣는 잔소리지만 오늘 따라 더 유난스럽게 퍼붓는 윤 여사의 핀잔이 듣기 싫어 그만 하라는 표시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다가 금세 배시시 웃으며 속없는 사람처럼 윤 여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헤헤. 엄마는 새삼스럽게 뭘 그래요. 그나저나 손에 들고 온 것은 뭐야? 혹시 먹을 것? 아싸! 안 그래도 배고파 죽을 뻔 했는데. 우와, 맛있는 것 무지 많이 싸왔네. 역시 우리 엄마 밖에 없다니까! 혜미야 어서 와. 배고픈데 빨리 먹자. 엄마는 식사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