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위험한 자세

“왜 쳐다보지도 않는 건데?”

은근하고 농밀한 도벽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아, 저, 서, 선배님, 이, 이것 좀 풀고…….”

“지금 8일 만에 보는 거야, 우리.”

허걱! 우리? 우와, 우와! 우리래, 우리래!

“추석에, 제주도에, 전라도에, 오늘은 대전에 충청도까지. 네가 돌아다니는 통에 만날 수가 없었잖아.”

어떡해, 어떡해! 목살이 타는 것 같아! 도벽아, 제발 목살에 대고 숨 좀 쉬지 마! 다리에 힘이 풀려! 도벽아, 좀 떨어져서 말해! 허리 좀 놔줘! 죽을 것 같아!

“사랑이는 내가 보고 싶지 않았나 봐. 내가 전화하지 않으면 먼저 전화도 안 하고. 어렵게 통화가 돼도 길게 하지도 못하고. 전화하겠다고 하고는 하지도 않고. 8일 동안 내내 기다리기만 하느라 정말 힘들었어.”

도벽아, 목소리 좀 어떻게 해봐! 그렇게 끈적이는 목소리로 강의하면 여학생들 발정 나!

“잘 기다렸으니까 키스해 줘, 사랑아.”

쪼오옥. 나의 목살에 도벽이가 찐하게 입술 낙인을 찍었다. 한계점을 넘어선 ‘곰살’ 도벽이의 강한 한 방에 나는 냉큼 항복을 선언했다.

“잘못했습니다!”

나는 두 손을 번쩍 들고 우렁차게 외쳤다.

“하하하하.”

도벽이가 웃었다. 크고 경쾌한 웃음소리가 닿아 있는 내 몸속을 진탕하게 울렸다. 도벽아, 목살에 대고 웃는 거 아냐! 죽을 것 같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목을 최대한 몸속으로 밀어 넣는 거였다. 하지만, 그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도벽이의 얼굴이 내 목 사이에 지렛대처럼 박혀 있었다.

뽁!

“으악!”

나는 두 손으로 확, 도벽이 얼굴을 떠밀고는 목을 감쌌다. 왜 내 목살을 빨아!

도벽이가 나를 돌려세웠다. 하지만, 그게 더 큰 문제였다. 돌아만 세웠다. 도벽이의 팔은 나의 허리를 아직도 감고 있었다. 은근하게 미소 짓고 있는 도벽이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서, 선배님, 모, 목에 뽀, 뽀뽀하지 마세요!”

내 얼굴이 점점 뒤로 젖혀질수록 도벽이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만해. 너 지금 아주 위험한 자세야.”

나는 힐끔 아래를 내려다봤다. 하나도 위험하지 않았다. 그냥 싱크대만 있었다.

헉! 도벽이가 내 허리를 세게 감았다. 놀란 내 얼굴이 도벽이한테 돌아왔다.

“그쪽이 아니야. 이쪽이야. 위험한 건.”

끔벅끔벅, 눈꺼풀이 몇 번 깜박이는 동안 나는 도벽이의 말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벼락처럼 알게 됐다. 아랫배에 크고 단단한 것이 밀착되어 있었다. 놀란 내 허리가 벌떡 섰다. 단단한 것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도벽이와 상체가 붙었다.

이건 좋은 자세가 아니다.

내가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데 도벽이가 내 손을 잡고 걸었다. 그러고는 창가에 있는 4인용의 커다란 소파에 앉혔다.

“심술부린 거야. 서울 도착하자마자 연락한다고 해놓고 안 해서.”

도벽이가 내 뺨을 살짝 꼬집더니 돌아서서 싱크대로 갔다. 능숙하게 매실 주스를 만들면서 도벽이가 물었다.

“저녁은 제대로 먹었어?

“네. 형석 선배님이 사주셨어요.”

도벽이가 고개만 돌렸다. 원망하는 듯한 눈빛 같기도 했고, 화가 난 눈빛 같기도 했다. 뭐든 상관없었다. 또 ‘곰살’ 심술을 부릴 것 같아서 난 빨리 말을 덧붙였다. 도벽이의 심술은 원초적이라 감당할 수 없었다.

“오늘 아침부터 밥을 못 먹었거든요. 그래서 배가 고파서, 아, 그래서, 요 옆에 식당을 갔는데 거기서 형석 선배님을 만났어요.”

도벽이가 돌아섰다. 나는 손을 크게 저으면서 빨리 덧붙였다.

“아니, 나랑 둘이서 먹은 게 아니고요. 형석 선배님이 업체 접대 모드셨는데, 제 밥값을 계산해 주셨어요.”

도벽이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돌아서서 주스 만들기에 몰입했다.

풀썩, 경직됐던 내 몸이 소파 등받이에 허물어졌다. 하지만 곧바로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앉았다. 도벽이가 얼음까지 넣은 머그잔을 양손에 들고 와 한 잔을 내밀었다. 그리고 회의 테이블에 있는 의자 하나를 끌어오더니 나랑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