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층짜리 맨션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지은 지 30년을 훌쩍 넘긴 건물은 퇴락하고 우중충했다. 재건축을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건물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었고, 벽면에는 큰 금들이 쩍쩍 갈라져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의 시멘트는 깨진 곳이 태반이었고 경사가 가파른 계단은 난간도 없이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비가 오는 날, 자칫 발을 헛디디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수 있을 만큼 위험했다. '한 여자가 양손에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버들 가지처럼 호리호리한 몸에 긴 생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는 계단참에 자리 잡고 있는 갖가지 잡동사니나 녹슨 자전거 따위를 힘들게 피해 가며 5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아파트 문 앞에 다다르자 무거운 장바구니를 내려놓은 여자가 송골송골 맺힌 이마의 땀을 닦았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들던 여자는 무심코 돌려 본 손잡이가 열리자,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열쇠를 도로 집어넣고 여자가 문을 열었다. 등으로 현관문을 고정시키고 장바구니를 안으로 들여놓은 다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신발을 벗고 막 안으로 들어가려던 여자가 급하게 벗어 팽개친 듯 보이는 낯선 하이힐을 발견했다. 앞 코가 뾰족하고 굽이 높은 선홍색 에나멜 구두였다.'여자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녀가 장바구니를 신발장 옆에 세워 둔 다음, 좁은 거실로 올라섰다. 식탁 대용으로 쓰는 사각 탁자 옆에 여자용으로 보이는 코트가 떨어져 있었다. 코트 옆에 조금 간격을 두고 눈에 익은 작업복 점퍼가 팽개쳐져 있었다. 기계적으로 점퍼를 주워 든 여자가 불에라도 덴 듯 옷가지를 내팽개쳤다.'여자의 시선이 곧장 안방 문으로 향했다. 겁에 질린 듯 불안하게 일렁이는 눈동자. 여자가 잠시 현관을 돌아보았다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저었다. 양손을 아프게 거머쥔 여자가 천천히 안방으로 걸음을 옮겼다.'안방 문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았다. 아랫부분에 흠집이 난 나무 문이 10센티미터 가량 열려 있었다. 벌어진 문을 통해 적나라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하아…… 아흣…… 하아…… 흣…….”'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되는대로 벗어던진 옷가지들이 방 입구에서부터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자 침대 위에 엉켜 있는 남녀가 보였다. 상체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가 남자의 벗은 몸 위에 올라타 있었다. 윤기 있게 찰랑거리는 짧은 머리에 커다란 앤티크 귀걸이를 한 20대 초반의 여자였다. 비음을 내지르는 입술이 도톰하고 붉었다. 군살 없는 몸은 매끄럽고 탄력 있었으며, 등 쪽으로 척추 선이 매끄럽게 뻗어 내려 있었다. '구겨진 시트가 허리까지 흘러내려와 하복부를 가리고 있었다. 무방비하게 젖가슴이 노출된 상체에 비해 하체의 벗은 모습은 시트 속에 감춰져 있었지만 얇은 천 위로 드러나는 실루엣만으로도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긴 어렵지 않았다. 천으로 가려져 꿈틀거리는 여자의 엉덩이가 탈피한 뱀의 허물처럼 외설적으로 보였다.'“헉……!”'지켜보던 여자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두 남녀의 시선이 단번에 문으로 향했다. 민망한 정사 장면을 정면으로 들킨 상황임에도 침대 위의 남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몸을 가리려는 시도도 안 했다.'“누구야?”'침대 위의 짧은 머리 여자가 엉덩이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채 물었다. 아래에 깔려 여자의 서비스를 즐기고 있던 남자가 나른한 눈빛으로 대답했다.'“와이프.”'“오우! 이를 어째! 현장에서 딱 걸려 버렸네.”'짧은 머리 여자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물결처럼 들썩이는 몸의 진동이 아래에 누운 남자에게로 전해지고 있었다.'“어떡하지? 도망가야 하나? 와이프한테 들켰는데, 여기서 그만둘까?”'“웃기지 마. 한창 달궈 놨는데, 하던 건 마저 해야지.”'남자가 양손으로 여자의 엉덩이를 움켜잡고는 자신의 하복부에 밀착시켰다.'“신경 쓰지 말고 계속 해. 워낙에 교양이 넘치는 여자라서 난동 따윈 부리지 않아. 무식하게 머리채 잡아 뜯기는 일 같은 건 없을 거야.”'“오호! 그래?”'짧은 머리 여자가 남자의 가슴 위로 고개를 숙였다. 붉은 입술 사이로 내민 작은 혀가 끈적끈적하게 살갗을 핥아 내렸다.'남자가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충격과 경악으로 흐려진 눈동자가 그들을 보고 있었다.'망연자실한 여자는 마치 발 아래로 뿌리가 내린 것처럼 굳어 있었다. 충격은 슬픔으로, 경악은 애원으로 바뀌고 있었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진한 비웃음이 어려 있었다.'“누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더 흥분되는군.”'“……여보.”'여자가 마치 꺼질 듯 연약한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하지만 남자의 눈빛은 잔인했고 악의로 가득 차 있었다.'“거기서 계속 지켜보고 있을 건가? 색다른 취미라도 생긴 모양이지? 아예 시트까지 걷어 내고 라이브로 보여 줄까?”'“……흡.”'더 이상 견디지 못한 여자가 터져 나오는 울음을 한 손으로 막고 방을 나갔다. 잠시 후, 거칠게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교태를 부리던 짧은 머리 여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녀가 남자의 가슴에서 입술을 떼어 냈다. 외설스럽게 꿈틀거리던 엉덩이의 움직임도 멈췄다.'여자가 남자의 몸 위에서 내려왔다. 질끈 눈을 감았다가 구르듯 몸을 돌린 남자가 상체를 일으켜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모조리 벗고 있을 거란 짐작과는 달리 남자의 하복부에는 진한 청색 팬티가 남아 있었다. 한 손으로 시트를 걷어 낸 남자가 둘둘 만 시트를 보지도 않고 뒤쪽으로 던져 주었다.'검은 레이스 팬티만 입고 있던 여자가 시트로 몸을 가리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주섬주섬 방바닥에 어질러진 옷가지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치마, 스타킹, 블라우스. 그녀가 남자의 바지를 주워 올려 그에게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