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안해.”'그녀의 작은 목소리에 지운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마냥 아기 같기만 하더니 10년 만에 나타난 하린의 모습은 완전한 여자였다. 도대체 언제 일어나 저걸 꺼내 입었는지 자신에게 딱 맞는 티셔츠가 하린의 작은 몸을 완전히 덮고도 모자라 하얀 쇄골 뼈까지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지운은 더 이상 그녀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 몸을 반쯤 돌리고 말했다.'“집으로 가.”'“나, 사실은 갈 데가 없어. 아빠는 내가 귀국한 거 몰라.”'“평생 비밀로 할 건 아니잖아.”'“응. 그건 아니지만, 당분간 나 여기 있으면 안 될까? 나 돌아온 거 알면 아빠 완전 화내실 텐데.”'“돌아가. 누구처럼 내쫓으시기야 하겠어?”'하린이 입을 틀어막으며 숨을 삼켰다. 그녀의 행동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도 모두 의식하고 있었지만 지운은 애써 동요하지 않는 척했다.'피가 흐르도록 상처를 주고 나면 다신 다가오지 않겠지. 지운이 밤새 내린 결론이었다. 그녀를 상처 입힐 만할 말들을 생각하면서 지운은 자신의 추악함을 비웃었다. 마치 준비라도 한 듯 하린이 상처 받을 만한 말들이 무수히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들은 지운의 가슴에도 수없이 상처를 만들어 냈다.'“오빠.”'“오빠? 누가? 난 한 번도 네 오빠였던 적 없어.”'“거짓말. 거짓말이야. 그건!”'“아니. 진심이야.”'“상처 받았다는 거 알아. 용서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하지만 우리 가족이잖아…….”'“가족? 하아. 가족이라고?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10년이나 지났는데, 넌 아직도 10살짜리 꼬마 애 같은 말만 하는구나.” '지운이 그녀에게 다가섰다. '“가족끼리 이런 짓, 할 수 있다고 생각해?”'어느새 볼이 축축해질 정도로 울고 있는 그녀를 보고 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하린에게 입술이 닿는 순간, 그 미미한 죄책감마저 날아갈 만큼 강렬한 전율이 지운을 감쌌다. '그의 입술이 닿는 순간 하린은 하늘이 뒤집힐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를 밀어내진 않았다. 10년 만에 만난 지운에게 더 이상 오빠는 없다는 걸 그녀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지운은 더 이상 자상하고, 자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주었던 그녀의 오빠가 아니었다.'“이래도 내가 가족이야?”'충격에 휩싸인 그녀의 얼굴을 보며 지운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자신이 한 말을 곱씹어봤다. 그녀를 상처 입혀 자신에게 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방금 한 말은 마치 자신을 남자로 봐달라는 어리광 같았다. '지운은 아예 그녀에게서 몸을 돌려 버렸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흔들렸다. 이러다가 정말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더 험한 짓 당하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내 집에서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