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운 풍악 소리가 삭방도(朔方道 : 강원도)의 한 방리(坊里)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오고가는 인파가 가장 많은 시장 한 가운데에서 벌어진 씨름판은 사내들의 호기와 웃음소리로 벅적거렸다. 살집이 우락부락하고 어깨가 떡 벌어진 두 장정이 한데 엉겨 붙어 막상막하의 기량을 자랑했다. 일순간 구경꾼들의 환호성이 하늘을 울린다 싶었더니, 한 쪽 사내가 자기 몸집만 한 상대 사내를 번쩍 들어올렸다. 실로 장사라고 칭할 만한 악력이었다. 순식간에 사내를 들어 올린 것도 모자라 그대로 빙글 돌려 패대기치듯 모래판에 쓰러뜨리니, 순간 새로이 등극한 장사의 출현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까지 벌떡 일어나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쳐댔다.'“저 놈, 역시 완력 하나는 천하제일이라니까.”'난리가 난 사람들 틈에서도 더없이 고요히 앉아 문득 웃음 짓는 청수한 외모의 청년이 있었다. 하고 있는 행색은 대충 지어 입은 평범한 촌부의 차림이었으나 단정하니 고운 생김이 잘못 보면 여인으로 착각되어 자칫 욕심 많은 고관에게 걸리면 수모를 당해도 몇 번은 더 당했을 법한 외모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고운 청년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보잘 것 없는 장사치임에도 왠지 모를 위엄이 서린 그 거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를 따르는 저 산만한 덩치의 장정 때문이었다.'“형님! 형님! 무실이가 또 이겨버렸구만요. 보셨습니까? 아주 그냥 패대기를 쳐 버렸구먼요!”'방금 씨름판에서 압승을 거둔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그 살집과 너무나 안 어울리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청년에게로 한 걸음에 달려가 실실거렸다. 청년은 씩 웃곤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그래, 이놈아. 네놈 덕분에 한 판 잘 보았다.”'청년이 목소리조차 어딘가 여인의 느낌이 묻어나는 깨끗한 음성으로 말하며 웃었다. 그 환한 웃음에 무실은 도대체가 덩치에 맞지 않는 순진무구한 부끄러움으로 뺨을 온통 물들이며 히죽 웃었다.'“자, 그럼 슬슬 객주로 옮겨 가 술이나 진탕 퍼마셔볼까?”'“듣던 중 반가운 소립니다요, 형님.”'크하하 웃어젖힌 무실이 반가운 술 생각을 하며 휘적휘적 걸어가는데 갑자기 사내 패 서넛이 그런 무실을 등 뒤에서 사납게 불렀다.'“섯거라, 거기 산적 같은 놈아!”'순간 청년이 날카로운 기색으로 그들을 느끼고 돌아보았으나, 정작 무실은 누가 자기를 불었는지 말았는지 술 생각에 입맛만 다시느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청년이 무실의 출렁거리는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무실아, 너 부른다, 너.”'“그래. 산적 같은 놈 너 말이다!”'안 그래도 무시당한 것 같아 화가 난 사내들이 기를 쓰며 무실에게 호령을 했다. 무실이 눈을 꿈뻑거리며 그 둥그런 얼굴을 돌려 사내들을 쳐다보았다.'“허어, 니놈들이 감히 이 몸을 산적이라 지껄인 것이냐?”'척 보기에도 불손해 보이는 사내들이 킥킥거리며 웃었다.'“그래. 그랬다면 어쩔 것이냐?”'“흐미, 산저억? 억울하고 분통 터져 못살겄네에 나처럼만 선량하게 살라 그래라, 엉? 어디서 이놈들이!”'무실이 주먹을 불끈 쥐고 으르렁거리며 다가가는 걸 청년은 지켜보기만 했다. 저들이 아무리 무실을 선동해 봐야 곰 같은 덩치에 전국에서도 내로라 할 정도로 힘이 장사인 무실을 당해 낼 리가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뭘 원하는 거이냐? 한 판 붙어보고 싶은 거이냐?”'“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이 힘만 센 무식쟁이 놈아! 상단(商團) 말뼉다귀면 조용히 상단에서 찌그러져 장사치질이나 할 것이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 내 동생을 한 번에 내다꽂아, 내다꽂길?”'듣자 하니 무실에게 진 사내가 저놈의 아우인 모양이었다. 무실이 킬킬 웃더니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었다.'“오냐, 이놈들아. 어디 세 놈이 한꺼번에 덤벼 봐라. 상단(商團) 말뼉다귀의 근성을 보여줄 테니까!”'“저, 저 건방진 놈이!”'결국 무실과 세 사내가 다시 붙었다. '“어이들! 저기 봐, 저기! 다시 붙는갑네!”'그러자 파장 분위기라 하나 둘씩 자리를 뜨려던 구경꾼들이 다시 시작된 힘겨루기를 반기며 너도나도 함성을 지르며 모여들었다. 엿장수들도 이게 웬 호기냐 싶어 하나라도 더 팔까 싶어 몰려들고, 코 찔찔 아이들까지 신이 나서 어른들 틈에 끼어 박수를 치고 난리였다. 생김 고운 청년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다시 구경꾼들 틈에 끼어 털썩 주저앉았다. 책상 다리에 팔짱을 척 끼고서 무실의 용맹한 도전을 다시금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미 예상했듯 지켜보나마나 한 경기였다. 역시나 무실의 덩치는 단지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노련한 기술까지 갖춰져 있어 세 사내 중 두 사내가 눈 깜짝 할 새에 덜렁 들려 한참이나 날아가 콕 박혔다. 저러다가 모래에 파묻히지 않을까 싶은 완력이었다. 청년은 쿡 웃으며 재미있는 구경거리에 연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저놈 저거, 상단(商團)의 진품이란 진품은 모조리 저가 빼돌려 먹고 힘을 키운 게 아닌가 몰라.”'그렇게 중얼거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어떠냐! 이래도 나처럼 선량한 인물을 감히 산적이라 부를 것이냐, 이 놈들아아!”'무실이 자신의 튼튼한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호기를 담은 포효를 울리자 구경꾼들의 함성도 함께 높이 터졌다. 반면 복수를 하러 나섰던 사내들은 초주검이 된 상태로 이를 으드득 갈고 있었다. 그동안 동네 장사의 형들로서 힘없는 자들을 위협해가며 해먹은 게 많았는데, 빌어먹게도 막 자란 무처럼 생긴 저 사내한테 당해버리는 바람에 앞으로의 일들이 막막해진 것이다. 어떻게든 저 살 뭉치 같은 놈을 이겨서 지금껏 하던 대로 편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그러나 설욕전을 벌인 기세도 잠시, 상황은 차라리 나서지 않느니만 못하게 된 것이다.'“자아, 이제 네놈이 마지막이냐? 어디 한 번 달려들어 봐라!”'연이은 승리로 호기가 오를 대로 오른 무실이 마지막 남은 한 놈을 행해 범과도 같은 포효를 울리며 외치자, 꼭 말라비틀어진 수세미처럼 생긴 나머지 사내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서 발발 떨기 시작했다. 이대로 매다 꽂히느냐,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느냐 이리저리 재고 있다가 문득 저 덩치 큰 놈과 함께 있던 청년을 발견하고는 버럭 소리쳤다.'“야, 이놈아! 니놈 덩치하고 내 덩치를 봐라, 어디 댈 걸 대야지! 내가 제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니놈의 살집에 파묻혀 어디 콧구멍으로 숨이나 제대로 쉬겠느냐!”'그러자 구경꾼들이 손바닥을 치며 낄낄 웃어젖혔다.'“하긴, 맞어, 맞어! 몸집이 다른걸!”'“암만! 저 덩치면 세 놈 살을 모조리 다 끌어 모아 붙여도 안 되지, 아무렴!”'무실이 피식 웃었다.'“황당한 놈일세. 눈에 훤히 보이는 덩치를 모르고서 덤비었느냐! 그 말은 곧장 승복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냐? 이 비겁한 인사야!”'“누, 누구더러 비겁하다는 것이냐! 나한텐 내 몸집에 딱 맞는 놈을 붙여 달라 이 말이다! 그래, 저기 니놈이랑 같이 낄낄거리던 저놈! 저놈 덩치가 나하고 딱 맞아 한 번 제대로 붙어볼 수 있겠구나!”'그러면서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 끝이 청년에게 가 닿았다. 일순 구경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갑자기 당한 일에 청년은 눈을 껌뻑거리다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콕 찔렀다.'“나?”'“그래, 네놈 말이다, 계집년처럼 반드르르한 네놈!”'어떻게든 이겨보고 싶어 사내가 낸 꾀인 듯. 알아차린 청년이 황당해서 피식피식 웃자 무실이 두둥 사내의 앞을 막아서며 죽일 기세로 내쏘았다.'“이놈이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니놈이 감히 저 형님의 드높은 명성을 아직 듣지 못해 불쌍한 세치 혀를 놀려대는 게지!”'당장이라도 저 비실비실한 청년과 한 판 붙어 설욕을 하려고 했던 수세미 쭉정이 사내가 기가 막혀서 파하하하 웃어댔다.'“뭐라고 했냐? 명성? 지나가던 똥개가 웃겠다, 이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