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을 옮겨 왔다. 그것이 내 인생 첫 여행이었다.

“학생. 일어나 봐요.”

수현은 몸을 흔들어대는 손에 억지로 눈을 떴다. 수현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하늘에 숨을 가쁘게 쉬었다. 눈을 감기 바로 전의 시간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으며 생각을 먹어치웠다. 떨려오는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남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아니 이 학생 왜 이래. 병원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야?”

“119에 전화할까요?”

그들은 아랑곳없이 수현의 얼굴에는 쉴 새 없이 눈물길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마를 틈도 없이 계속해서 가지를 쳤다. 살갗을 적시는 눈물은 뜨겁고도 차가워서 피부에 온도가 먼저 그랬는지 눈물의 온도가 먼저 그런 것인지 순서를 알지 못했다. 수현은 남자들이 계속해서 흔드는 손길이나 이어지는 말들에 여전히 대꾸하지 못했다. 감정의 파도에 헐떡이느라 그럴 여력이 없었다. 수현은 망망대해에 맨몸으로 남겨져 있는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잡을 곳을 찾아 팔을 버둥거렸다. 수현의 목구멍을 뚫고 울분이 뱉어졌다.

사람의 소리가 아닌 소리가 나왔다. 수현이 토하듯 내놓은 것은 삶을 사는 존재들이 갖는 본연의 슬픔이었다. 그러면서도 그것보다는 조금 더 격한, 죽음을 눈앞에 뒀던 존재가 갖게 되는 분노, 억울함 같은 달갑지 않은 색을 지닌 울음이기도 했다. 대개의 울음이 부정하고 싶은 감정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렇게 한참을 웅크려 우는 동안 수현은 자신을 흔들어 깨우던 남자들에 의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동안 수현은 자신이 옮겨지는 것도 어딘가에 눕혀지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해가 저물어 갈 때가 돼서야 지쳐 잠에 들었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쓰다듬고 눈물을 가져갔다. 또르르 떨어진 물방울이 온데간데없었다.

‘울지 마.’

바람은 가지 않는 곳이 없어서 닿지 못할 곳의 소리들도 가지고 왔다. 수현은 그렇게 누군가의 염려 속의 꿈결로 흘러들었다.

수현이 유영하던 꿈속에서 많은 것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한 사람의 삶.

아이가 태어났다. 익숙한 얼굴을 한 남녀의 아이. 아이는 자랐고 제 부모를 따라 어떤 건물에 들어갔고 또 아이는 계속해서 자라며 여러 공간에 놓였다. 그러던 중 남자가 아이와 여자를 떠났다. 아주 불시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누구도 갑작스럽다고 여기지 않았다. 아이는 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랐다. 분명 여자가 함께 있었음에도 여자와 아이는 홀로 외로웠다. 아이는 또래의 북적임 속에서도 외롭지 않은 척 외로웠다. 아이가 어릴 적부터 찾던 공원은 기물들이 많이 낡아서 마치 아이의 일기장 같았다. 낡고 바랐지만 아이를 쭉 지켜봐 왔다는 점에서. 그렇게 아이는 봐주는 어른 없이 혼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아이를 떠날 때 그러했던 것처럼. 어머니가 아이와의 생활보다는 창밖 세상을 꿈꿀 때 그러했던 것처럼.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것은 아이의 부모를 볼 때와 같은 익숙함을 주었다.

그것은 수현의 얼굴이었다.

수현은 또다시 갑작스레 눈을 떴다. 뜨인 눈과 함께 벌떡 일으켜진 몸, 여러 곳이 아려 왔다. 팔에 쓸린 자국도 여럿이었다. 무심하게 돌린 눈에 보이는 세상은 퍽 낯설다. 수현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면 수현은 또 눈을 떴다. 세상은 여전히 낯설다. 수현은 옷을 헤집었다. 맑게 하얀 셔츠도 낯설었지만 그럼에도 놀라게 되는 것은 손바닥에 닿는 살결이 부드러워서였다. 핏물이 배어 나오지 않고 흙이 묻어 나오지 않고 성하지 않은 부분이 하나도 없는 몸 때문이었다. 너무 멀쩡한 몸 때문이었다. 수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러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곳은 병원이구나. 병원이야. 생전 처음 듣는 그 단어를 수현은 명확히 알고 있다.

수현은 이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 가지 직감을 했다.

내가 꿨던 꿈이 이 여자의 삶이구나.

이 세상이 이 여자가 살고 있던 세상이구나.

수현의 영민함이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아주 순간이었다. 수현의 생각은 자꾸만 흩어지고 자꾸만 저들끼리 엉켜서 수현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꿈속 부모의 얼굴은 저의 부모의 얼굴이다. 꿈속 여자의 얼굴은 수현의 얼굴이었다. 꿈이 그저 꿈인지 이 상황이 꿈인지. 수현은 몸을 뒤집어 침대에 엎드렸다. 잔뜩 웅크려진 몸은 상황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한다. 주제를 알 수 없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현실에 수현은 온 힘을 다해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멈춰 섰다. 맞닿는 곳은 운이 좋게도 푹신한 벽이다, 서늘한 총구가 아니라.